신도시는 정부 주택공급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건설 계획과 입주 시기 등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는 등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1기 신도시는 지난 1991년 분당에서 최초 입주를 시작한 이래 30여 년이 지나면서 이제 재정비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출발한 3기 신도시는 과연 정부의 목표대로 기존 신도시들의 단점을 보완한 형태로, 적기에 탄생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수도권 신도시의 역사와 전망을 살펴봤다.[편집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주택 가격 급등에 정부는 때마다 '수도권 신도시'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주택난 등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노태우 정부는 '1기 신도시'를 조성했다. 분당, 일산 등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아파트값이 다시 급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2001년 '2기 신도시' 계획을 내놨다. 판교, 동탄, 광교 등이 해당한다.
1·2기 신도시는 모두 서울 주택난 해소와 수도권 주택 가격 안정이 목표였다. 실제로 1기 신도시 입주 이후 주택 가격 상승세가 멈추며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의 자족 기능이 부족해 베드타운에 그쳤다는 점 등은 단점으로 꼽힌다.
2기 신도시의 경우 자족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1기 신도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했다. 인근 대도시와의 적당한 거리는 자족 도시 형성의 필수조건이다. 산업단지 인근 판교에는 테크노밸리를 유치했다. 하지만 자족 기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도시는 판교와 광교 정도에 불과하다. 아울러 서울과의 원거리가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사천리' 1기 신도시, '베드타운' 한계
통상 신도시는 330만㎡ 이상 규모로 시행하는 개발사업으로, 자족성, 쾌적성, 편리성, 안전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계획에 의해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도시를 말한다.
1기 신도시는 1988년 수도권 주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계획한 도시다. 서울올림픽(1988년) 이후 서울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주택난이 심화한 상황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 가구 건설 정책을 추진하는 일환으로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에서 1시간 이내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20~25㎞)에 도시를 건설키로 했다.
1기 신도시로 성남 분당과 고양 일산,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부천 중동 등 5개 도시를 지정해 약 30만 가구를 지었다. 서울과의 연계가 용이하고 쾌적한 환경 그리고 지가가 저렴한 지역들이다.
1기 신도시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1989년 11월 분당신도시 택지조성 공사에 착수한 후 불과 2년이 지나지 않은 1991년 9월 입주를 시작했다.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합병해 현 LH로 출범) 등 공공기관이 주체가 돼 택지개발예정지구를 지정했다.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에서부터 택지개발계획 승인까지는 불과 4~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1기 신도시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함께 나온다. 주택난 해소와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1차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1989년 18.82%, 1990년 37.62%에 달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4.5%, 1992년 -4.33% 등 하락세로 돌아섰다.
반면 신도시 내 업무시설 부족으로 자족성이 결여된 베드타운을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다. 일자리는 물론 상업 기능도 미비해 서울로 장거리 통근 인구가 급증해 사회적인 비용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불과 몇 달 사이 입지가 선정되면서 종합적인 도시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분당에서 내곡, 분당에서 수서 등 유사한 지하철 노선에 중복으로 투자되거나, 일산선과 같이 기형적인 선형 노선이 등장하기도 했다.
판교·광교 '자족 도시' 평가…운정·검단 '미완'
2기 신도시는 IMF 이후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서울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발표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02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30%를 웃돌았다.
수도권 10곳과 충청 2곳에 약 61만가구를 짓겠다는 목표였다. 성남 판교, 화성 동탄, 김포 한강, 파주 운정, 수원 광교, 위례신도시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적인 자족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에서 평균 30~40㎞ 등 원거리에 위치한 지역을 골랐다.
당시 정부는 판교, 동탄 등이 서울 강남지역의 주택수요 대체와 기능을 분담할 것으로 기대했다. 판교에는 테크노밸리 등을 조성해 자족 기능을 키우고자 했다. 김포 한강과 운정은 서울 강서와 강북 지역의 주택 수요 대체와 성장 거점 기능을 부담할 것으로 봤다.
빠르게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와는 달리 2기 신도시 건설은 지지부진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기를 겪으면서 사업이 더뎌지기도 했고, 토지보상 등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먼저 사업을 시작한 동탄과 판교 등은 건설이 끝났지만, 파주 운정과 인천 검단의 경우 오는 2023년에 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2기 신도시는 1기 신도시의 단점을 보완해 녹지율을 높이기 위해 각 생활권에 근린공원과 어린이 공원을 배치하고 주요 도로변에는 완충 녹지대를 설치했다. 아울러 1기 신도시의 단점인 인구밀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가 쓴 논문 '신도시개발정책의 과제와 전망(2008)'에 따르면 2기 신도시 평균 인구밀도는 1헥타르 당 107명으로 1기 신도시 평균밀도(233명/헥타르)의 46% 수준이다.
2기 신도시 역시 입주 이후 집값이 떨어지며 시장이 안정화했다. 당시 부동산 시장이 이미 침체한 영향도 있었다.
반면 1기 신도시에 비해 거리가 멀고 교통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점은 결정적 단점으로 평가된다. 서울 원거리에 도시를 조성한 것은 애초에 자족 기능을 키우기 위해서였지만, 정작 자족도시로 성장했다고 평가받는 곳은 판교나 광교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에서의 인구유입보다 경기도내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울 인구 과밀화 해소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기 신도시는 1기 신도시에 비해 서울에서 원거리에 조성되면서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프라를 공급한 후 이주하는게 순서인데 이주가 이뤄진 후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려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당시 계획했던 철도 노선 중 아직도 개통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2기 신도시가 채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집값은 또다시 급등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 2018년 3기 신도시 카드를 꺼냈다. 수도권 일대 30만 가구 조성을 목표로 내놨다.
2기 신도시의 목표가 '독립형 자족도시'라면 3기 신도시는 서울과 인접하면서도 자족기능까지 더한 도시를 목표로 한다. 이른바 '연계확장형 도시'다. 부동산 시장 안정에 더해 1, 2기 신도시의 단점까지 보완하겠다는 쉽지 않은 목표를 내걸었다.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1기 신도시는 주거 중심으로 개발돼 산업 및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며 "일자리를 찾으러 도심으로 나오다 보니 통근 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3기 신도시의 경우 교통을 먼저 구축하고 이주를 하겠다고 발표한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