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빌라 등 비아파트의 전세금반환·임대보증금 보증 가입 때 공시가 대신 '감정가'를 주택 가격으로 삼을 수 있도록 문을 '살짝' 열었다. 임대인이 공시가격 등에 이의를 신청하고 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먼저 HUG에서 예비 감정(무료)을 한다. 신청자는 이 결과를 토대로 HUG가 의뢰한 감정평가법인에서 본감정(유료)을 진행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공시가 일률 적용을 통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업계에서 완화를 요구해 온 '공시가 126% 룰'은 유지한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이런 내용을 담은 '민생토론회 후속 규제개선 조치'를 발표했다. 주택 공급을 저해하고 국민의 주거 불편을 줄이기 위한 취지의 각종 방안이 담겼다.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의 각종 '포비아'를 해소하려는 취지로 임대보증 체계도 손봤다. 앞서 정부는 '빌라왕' 등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자 전세금반환·임대보증금 보증가입 기준을 강화했다.
지난해 5월부터 전세가율을 100%에서 90%, 공시가격 적용 비율은 150%에서 140%로 조정해 공시가격의 126%만 보증하도록 조정했다. 빌라의 경우 공시가격이 매매가격보다 크게 낮은데 보증보험 한도까지 줄어드니 '역전세' 현상 등이 나타났다. ▷관련기사:[인사이드 스토리]보증보험 가입기준 '전세가율 90%'의 불편한 진실(2023년 3월9일)
이에 비아파트 임대인 등은 '공시가 126% 룰'을 완화 또는 폐지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국토부는 '무자본 갭투자'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이번 방안에서도 기존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주택 가격을 산정할 때 'HUG 인정 감정가'도 허용키로 했다. 주택의 공시가격이 시세 변동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임대인이 이의를 신청하고, 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증회사는 피보증인에 대해 보증심사를 해야 하는 기능이 있다"며 "그동안 전당포에 시계를 가져가면 전당포 주인이 아니라 시계 주인에게 감정을 맡겼는데 그걸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정가는 국가에서 만든 좋은 제도지만 '업 감정(과다 감정)' 문제 때문에 후순위로 뒀다"며 "이의 신청한다고 감정가가 꼭 126%보다 높을 거라 단정할 수 없다. 민원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감정가로도 가입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대인이 HUG에 공시가격 이의 신청을 하면 HUG가 예비 감정(1~2일 소요)을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HUG가 직접 의뢰한 감정평가법인에서 본감정(약 2주 소요)을 진행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임대인은 공시가와 감정가 중 하나를 선택해 집값을 산정받을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비 감정은 무료고 본감정은 비용을 내야 한다"며 "집주인이 직접 평가 법인에 감정을 신청하면 통상 50만원 정도 드는데, 이번에 HUG가 미리 계약해 놓는 거라 그보다는 싸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UG는 감정평가 법인에 대한 입찰 공고를 내고 7월 중하순경 5개 법인을 정해 감정 평가를 의뢰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연간 2만~3만 가구의 감정평가를 의뢰할 것으로 보고, 이번 규제 완화를 통해 '임대시장 안정화'를 기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HUG가 감정평가를 직접 의뢰하기 때문에 감정평가 절차 등에 대해 공신력과 객관성을 강화할 수 있고, 주택 가격도 보증 당시 시세 등 개별 주택 특성에 맞게 산정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대인들은 임대보증금 반환 등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전세를 희망하는 임차인들도 임대인의 보증금 월세로 전환 요구 등 우려가 낮아진다"며 "'빌라 포비아' 문제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주로 노후 빌라보다는 역세권 신축 연립·다세대 위주로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며 "비아파트에서 빨라진 월세화와 아파트로의 전세 쏠림이 일부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