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직장인 A씨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이사를 준비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몇 달 전 연락한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해야 보증금을 내줄 수 있다고 말한 뒤 연락이 잘되지 않아서다. 전세사기, 역전세 등으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세입자가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전세금 반환소송을 걸면 지연이자도 받을 수 있다지만 이사를 하려면 당장 보증금이 필요한 A씨는 이마저도 아득한 일이다.
정부가 이처럼 불투명한 개인 간 거래에서 생길 수 있는 전세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집주인인 '기업형 장기민간임대사업' 도입을 추진한다. 정부는 20년 이상 장기운영 사업인 만큼 장기투자에 적합한 '보험사'를 기업 참여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정작 보험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아직까지 참여 방법 등이 구체화하지 않은 데다, 자산운용 위험 대비 수익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우리집 집주인이 보험사라면?
장기민간임대주택은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나 보험사 등 기업(법인)이 '100가구 이상 임대주택을 20년 이상 의무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통해 연간 1만가구 공급, 2035년까지 총 1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관련기사 : 전세불안 없앨 '20년 민간임대'…정부 "10만가구 목표"(8월28일)
임대 시장 80%를 차지하는 개인 간 거래에서 생길 수 있는 전세사기 위험을 막고, 2~4년마다 이사를 반복해야 해 퇴거·전세사기 위험에 노출된 문제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전세사기 문제가 대두된 임대차시장을 전세에서 월세 위주로 바꾸기 위한 복안도 담겼다. ▷관련기사: '뉴스테이 시즌2'?…박상우 "전세가 불안 야기"(3월15일)
정부는 기업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임대료 규제를 확 풀기로 했다. 기존 10년 장기임대주택과 달리 세입자가 바뀌면 시세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고, 주거비 물가상승률보다 더 높은 임대료 인상률도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 민간 임대주택은 저렴한 임대료를 견디다가 분양 전환을 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이에 기업참여가 저조했던 만큼 임대료 현실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 지원과 규제를 차등 적용해 사업유형도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으로 나눴다. 자율형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규제(2+2년, 임대료 상승률 5% 상한)외에 현행 민간임대주택 특별법상 규제를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별다른 정부 지원이 없는 대신 임대료 규제에서 자유롭다.
준자율형은 계약갱신청구권과 갱신 시 임대료 5% 상한을 적용하는 대신 취득·재산세 감면과 기금융자 등 혜택이 추가된다. 지원형은 초기임대료를 시세의 95%로 제한하는 대신 기금출자, 공공택지 할인 공급 등 공적지원을 받는다.
특히 보험사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사업 참여를 높이기 위해 보험업의 주택임대 허용을 법령상 명확히 하기로 했다. 또 보험사가 장기 임대주택 보유 시 재무건전성 평가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의 부동산투자 위험계수를 기존 25%에서 20%로 완화해 주기로 했다.
수익실현에 나설 수 있도록 5년 이상 임대 운영 후 임대주택 전체를 포괄적으로 넘기면 넘겨받는 사업자도 양도인도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포괄양수도'도 허용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장기간 자산운용을 하는 산업인 만큼 호흡이 긴 20년 장기임대 사업과 잘 맞을 것으로 본다"면서 시장 활성화 적격 '기업'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위험 대비 수익성 '물음표'…보험사-당국 '동상이몽'
그러나 정작 보험업계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보험사 자산운용 핵심인 재무건전성(리스크)과 수익성 부분에서 별다른 효익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 측면에서 새로운 비히클(투자수단)이 생긴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 만큼 수익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시 가장 큰 걸림돌인 재무건전성 부담 완화도 사업 참여 유인을 높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급여력비율 적용 위험계수 완화가 보험사가 직접 장기임대주택을 보유할 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일반부동산을 장기보유나 요양산업 목적으로 취득 시 위험계수를 25%에서 20%로 낮춰 적용할 수 있다"면서 "지급여력비율 관련 세칙에 내용이 있어 보험사가 요청 시 유권해석을 통해 위험계수 완화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직접 투자 방식에는 부정적이다. 입주자 민원, 분쟁 등이 예상되는 장기 임대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데다, 수익성을 위해 임대료를 높게 받으면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보험사 관계자는 "금융업은 이미지가 생명인데 임대료를 조금만 높게 받아도 부정적 인식이 쌓일 수 있다"면서 "더욱이 보험업은 규제산업이라 당국에도 밉보일 수 있어 직접 투자로 나서기 쉽지 않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장기 임대주택 투자에 나설 경우 직접 투자보다는 리츠를 통한 지분투자나 리츠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외려 지급여력비율 부담은 커질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건전성 규제 완화는 보험사가 직접 장기임대주택을 보유 시에만 적용된다"면서 "리츠에 지분투자를 하게되면 '상장주식 투자'로 적용돼 위험계수는 더 높은 35%가 적용되고, 리츠 자산 담보대출 역시 부동산 직접보유가 아니어서 신용위험액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낮은 신뢰도 부담이다. 임대주택 관련 제도만 해도 정권 변화에 따라 궤를 달리해 왔기 때문이다. 20년 장기 임대주택 관련 정책 역시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보험업게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은 정책적인 리스크(정책 변화)도 큰 데다 장기간 주택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예측이 어렵다"면서 "투자에 나서기 위해서는 운용수익, 자산가치가 중요한데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자산가치 상승 기대감도 낮아 사실상 유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민간임대는 공공임대와 비교해 임대료가 높을 텐데 도입 취지인 전세시장 불안, 전세사기 방지 등 전세시장 수요를 월세 시장으로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며 "뚜렷한 정책 지원이나 일관된 정책이 담보되지 않는 한 보험사들이 들어가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시장"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