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하는 주택 매수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달 말부터 법원에 '미래등기시스템'이 새로 생기는데 이 비대면 주담대에 차질이 생겼다가 해소됐기 때문이다.
법원 행정이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관련 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아 시장 혼란과 소비자 피해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잠정 중단됐던 비대면 주담대는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선'했다는 신규 인터넷등기소가 과연 더 편리할지에는 많은 의구심이 남는다.
비대면 주담대 중단 사태…결국 물러선 법원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미래등기추진단은 이달 31일부터 미래등기시스템을 도입한다. 미래등기시스템은 복잡한 등기 절차를 모바일로 처리하도록 구현한 신규 인터넷등기소다.
현행 등기 제도가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사회·경제적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마련한 차세대 등기 체계다. 법인 등기신청의 편의와 전자신청 활성화를 목적으로 2020년부터 추진 중이다.
법원행정처는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광명등기소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스템이 현행 부동산 거래 방식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통상 소유권이전등기는 대면(인감날인), 근저당권설정등기는 비대면(전자서명)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매수인과 매도인이 잔금을 치른 뒤 법무사가 등기소에 가서 소유권이전등기를 처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은 근저당설정등기를 전자서명으로 처리해 비대면 주담대를 내어준다.
하지만 미래등기시스템이 도입되면 소유권이전등기와 근저당권설정등기 처리 방식을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통일해야 한다. 모두 대면으로 처리하려면 비대면 주담대를 받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처리하려면 매도인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던 매도인이 직접 앱에 접속해 전자서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추가된 것이다.
이에 일부 시중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취급을 잠정 중단했다. 영업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은 큰 타격이 우려되기도 했다. 지난 16일 법원행정처는 은행연합회 및 은행 관계자와 간담회를 열고 소비자 불편 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법원행정처는 결국 대면·비대면 혼용 방식을 허용하기로 했다. 법원 관계자는 "조만간 은행연합회에 미래등기시스템 도입에 따른 부동산 등기 서비스 안내문을 배포할 예정"이라며 "31일 시스템 도입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문제 된 부분은 기존대로 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자서명 방식을 강행했다면 시장 영향이 상당했을 텐데 법원행정처가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봤다. 이들 은행은 시스템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대로 비대면 주담대를 재개할 방침이다.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고객을 영업점으로 오게끔 하면 되지만 우리는 매도인의 협조를 구하는 방법뿐이었다"라며 "고객 불편 없이 비대면 주담대를 제공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도 편해진 거 맞아?"
은행권 혼란에 법원이 한발짝 물러섰지만 미래등기시스템은 오는 31일 정상 도입된다. 20일 법원행정처는 대한변호사협회에 공문을 보내 시스템 이용 방법을 안내했다. 대한법무사협회도 이달 초 대법원 요청에 따라 시스템 안내 영상을 게재했다.
사업 추진 당시 법원행정처가 강조한 장점은 '편리함'이다. 이제부터는 전자 등기를 신청할 때 인감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해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고 제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셈이다.
법무사협회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등기 업무처리 간소화와 등기기록관리 고도화 역시 주된 목적이다.
관할 등기소가 다른 사건도 한 곳에서 등기 사무를 처리할 수 있고, 인터넷등기소를 통해 관련 서류를 신청 및 열람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인터넷등기소 모바일 앱을 통해 전자신청을 하고, 무인 발급기 발급예약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다만 전자신청 활성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엔 '반쪽의 성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규 시스템은 변호사나 법무사 등 실무자가 등기 사무를 처리할 때 번거로움을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바일 앱 위주의 개편으로 고령층 등 일부 세대엔 오히려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대면·비대면 혼용 방식을 유지하며 모바일 전환을 한다는 건 은행 쪽 법무사는 필요하고, 중개사 쪽 법무사는 역할이 작아진단 얘기"라며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비대면으로 하면 은행 쪽 법무사 비용이 금리에 녹아있다 보니 비용 절감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봤다.
이어 "법무사를 통하지 않고도 '셀프등기'가 가능할 정도여야 편리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오히려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엔 제약이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