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건설업계 최고경영자(CEO) 인사 추세는 '비전공자'의 득세다. 건설업에 잔뼈가 굵은 '건설통' 인사 대신 재무구조 관리 내지는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가능한 타 분야 출신 전문가를 내세우는 흐름이다.
이는 본업인 건설업 경쟁력 강화에 대한 필요성보다 업황 불황 속 '기업 생존'을 우선시하는 전략이 반영된 행보라는 해석이다. 각 사별로 강점을 가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직을 안정화할 수 있는 경영진을 꾸려 나가는 분위기다.

'하이닉스' DNA 이식
12일 업계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는 새 사장에 '반도체 전문가' 김영식 SK하이닉스 양산총괄(CPO)을 내정했다.
김 신임 사장 내정자는 1967년생으로 연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시절 입사해 1990~2013년 연구소 DRAM·선행 공정 개발을 시작으로 하이닉스에서만 공정기술그룹 포토팀·소재개발팀, 제조·기술 포토기술담당, 이천팹(FAB, 공장) 담당, 제조·기술담당, 양산총괄 등을 지낸 '하이닉스맨'이다.
반도체 공정에 대해서는 그룹 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실제 고대역폭메모리(HBM) 대량 양산체계를 구축하는 등 성과를 낸 바 있다.
건설과는 거리가 먼 이력이다. 전임 김형근 사장도 건설과는 무관한 재무 전문가였다. 2대 연속 비건설인 출신 인사로 건설사 색채를 빼는 모양새다.
실제 SK에코플랜트는 '리밸런싱'이라는 명목 아래 반도체 종합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김형근 전 사장이 기업공개(IPO) 추진과 함께 재무 건전성 강화에 주력했다면, 김영식 신임 사장은 종전의 과제에 더해 본격적인 반도체 기업 도약에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SK에코플랜트는 "이번 인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통해 재무구조 안정화 기반을 마련한 가운데 반도체 종합서비스 기업으로서 비전과 성장 전략을 구체화하고 본원적 경쟁력을 지속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재무통'에 주어진 특명
한화 건설부문도 새 사령탑을 선임하며 변화를 꾀했다. 지난 2022년 부임해 3년간 건설부문을 이끌었던 김승모 대표 대신 그룹 내 '재무통'으로 꼽히는 김우석 한화 재무실장을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1968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김 신임 사장은 1992년 입사해 30년 넘게 한화에 몸담고 있다. 재무와 경영진단 부서를 거쳐 한화테크윈 경영지원실장(2015~2019년), 한화컨버전스 대표이사(2019~2022년)를 거쳐 2022년부터 한화 재무실장을 역임했다. 경영·재무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김우석 신임 사장은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 건설부문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영업이익이 흑자 전환했다. 다만 올해 1분기 130억원에서 2분기 829억원, 3분기 다시 189억원으로 쪼그라드는 등 실적이 다소 불안정한 상태다. 매출 또한 3분기 70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하는 등 외형이 축소된 모양새다.
한화그룹은 "김 대표 내정자는 경영·재무 분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화 건설부문 우량 수주 및 재무 건전성 제고, 안전경영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30년 원클럽맨, 체질 개선 이끈다
주택 브랜드 '하늘채'를 보유한 코오롱글로벌 또한 새 얼굴에 지휘봉을 맡겼다. 기존 김정일 대표 체제에서 벗어나 김영범 코오롱ENP 사장을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1965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신임 대표는 1990년 코오롱에 입사해 경영지원본부 본부장, 사업관리실 전무 등을 지냈다. 2018년 코오롱플라스틱(현 코오롱ENP)를 시작으로 코오롱글로텍(2020년), 코오롱인더스트리(2023년), 코오롱ENP(2024년) 등에서 대표직을 수행했다.
경영 분야 전문가인 데다 그룹 내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계열사를 이끌었던 경험을 보유한 만큼 코오롱글로벌의 체질 개선과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적임자라는 평가다. 코오롱그룹은 그에게 '부동산·환경·에너지 토털 프로바이더'로 성장을 주문했다.
악화한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필수다.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코오롱글로벌 매출액은 1조3785억원, 영업이익은 287억원이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567억원으로 적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상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긴 했지만 매출이익이 2조9120억원에서 반토막이 났다. 부채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388.3%로 400%에 육박하고 있다.
재무 건전성 개선을 위해 코오롱글로벌은 현재 코오롱 계열사인 MOD와 LSI 합병을 추진 중이다. 또 수처리시설을 비롯해 신재생 풍력발전사업 등 환경 분야 사업 규모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환경·플랜트부문 매출액은 1364억원으로 전년 동기 809억원 대비 68.6% 증가했다.
이외에 신세계그룹 건설 계열사 신세계건설 또한 지난달 인사를 통해 강승협 신세계푸드 대표를 새 수장으로 내정했다. 강 신임 대표는 고려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1995년 입사해 30년간 몸담은 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통' 인사로 분류된다. 적자 늪에 허덕이고 있는 신세계건설의 재무 건전성을 개선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비건설인' 비중 더 커질까
건설업 침체는 장기화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올해 2분기 건설업 기업경영을 분석한 결과 건설업 총자산증가율과 매출액증가율은 모두 역성장했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세전순이익률과 이자보상비율 또한 전년 동기 대비 하락했다.
이지혜 건산연 연구위원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건설업의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 모두 어려운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높은 공사비와 고금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인한 부동산 금융 제약, 건설 관련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당분간 어려운 건설경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 속 건설사들은 본업인 건설을 대체할 수 있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경영을 아예 건설인이 아닌 타 분야 전문가에게 맡겨 체질 및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 다각화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분위기다.
아직 대형 건설사 등 업계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같은 침체기에는 방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며 "생존 문제가 달려있다 보니 재무통이나 영업통 등 각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