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집집마다 거실에 피아노 하나 놓는 게 필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삼익'과 함께 국산 악기 브랜드의 양대 산맥이었던 '영창'의 피아노 광고 속 노래 가사입니다.

피아노로 명성을 떨쳤던 영창악기. 그런데 이 회사가 HDC그룹 산하 계열사였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고 2006년 현대산업개발이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렇게 됐습니다.
사명 또한 그냥 영창이 아닌 'IPARK영창'입니다. 당초 'HDC영창'이었다가 지난 2월 그룹 포트폴리오 재편에 따라 HDC 대신 IPARK가 붙게 됐죠. HDC영창 전에는 '영창뮤직'이라는 이름도 활용했었습니다.
그러나 간판을 바꿔 달자마자 위기에 놓였습니다. 지속된 경영 악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지난달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기 때문인데요. 국내 악기업계를 주름잡았던 영창은 어쩌다 존폐 기로에 놓이게 됐을까요.
'악기'로 향했던 정몽규의 눈
IPARK영창의 시작은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국내 최초로 피아노를 제조했던 영창악기는 1972년 아시아 업체 최초로 일본에 4500대 피아노를 자체 브랜드로 수출했습니다. 1991년에는 세계 어쿠스틱 피아노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등 업계 선두로 거듭납니다.
1990년에는 미국 전자악기 업체였던 커즈와일을 인수해 어쿠스틱뿐 아니라 디지털 피아노 시장에도 뛰어듭니다. 어쿠스틱 악기 분야에서 다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악기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1999년에는 미국 신시사이저 시장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창악기가 마냥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1997년 발발한 외환위기 영향을 영창도 피해 가지 못했는데요. 1998년 워크아웃(채권단 기업구조 개선작업)에 돌입해 2002년 졸업에 성공했으나 결국 2004년 최종 부도에 이릅니다.
구세주로 나선 건 정몽규 당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었습니다. 악기 제조를 신사업으로 눈여겨봤던 정 회장은 2006년 영창악기 인수전에 뛰어듭니다. 정 회장이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접하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점도 인수 동기가 됐다는 게 당시 후문입니다. 동종업체 간 시너지를 노렸던 삼익악기와 인수 경쟁을 벌인 끝에 현대산업개발은 영창악기를 사들입니다.

현산 지원에도 '밑빠진 독'
이후 시작된 HDC그룹과 영창의 동행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990년대 호황을 누렸던 악기 시장은 보급 포화 상태에 접어들며 급격히 침체했습니다.
영창의 실적도 쪼그라들었습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8년간 영업손실을 냈고요.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흑자로 돌아서며 숨을 고르는 듯했지만, 2020년부터 코로나 여파로 다시 적자의 늪에 빠졌습니다.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룹은 영창을 살리기 위해 다각도로 자금을 투입합니다. 2015년에는 영창 소유 부동산 매입 및 유상증자 참여, 회사채 매수 등을 통해 총 863억원을 지원했고요. 이후로도 아이앤콘스 등 계열사를 통해 현금을 대여합니다.
▷관련기사: 현대산업개발, ‘밑빠진 독’ 악기제조사에 물려…錢錢긍긍(2015년 1월16일)
이러한 지원에도 영창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재기를 위해 영창은 건설업 모그룹 특성을 살려 2017년 전문직 공사업을 신사업으로 추가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모색합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영창의 전문직 공사 매출액은 102억원으로 전체 311억원 대비 적지 않은 비중(32.8%)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업인 악기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흑자를 냈던 2019년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2019년 피아노·전자악기·관현악기 매출액은 도합 534억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175억원에 불과했습니다. 6년 만에 매출액 67.2%가 달아난 겁니다.
수익성이 떨어지니 재무구조 또한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IPARK영창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총차입금 의존도는 2023년 36.5%에서 2024년 59.1%, 지난해에는 73.7%까지 급등했습니다.
'맑고 고운 소리' 이어갈 수 있을까
결국 부실을 견디지 못한 IPARK영창은 지난달 16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습니다.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IPARK영창'이라는 새 간판을 달게 된 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입니다. 서울회생법원은 다음날인 17일 회사재산 보전처분 및 포괄적 금지명령을 결정했습니다. 현재는 개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HDC그룹 측 설명입니다.
IPARK영창은 "최근 수년간 악기시장 수요가 지속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 제조시설 운영에 따른 고정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며 "이로 인해 자금 유동성까지 저하돼 정상적인 채무 이행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러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 효율화, 물류비 절감, 재고 축소, 제품 라인업 개편 등 사업 전반에 걸친 비용 효율화 등 다방면의 자구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글로벌 악기 시장의 구조적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자력으로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IPARK영창의 회생절차 신청은 상법 개정 이후 계열 지원이 중단된 첫 사례라고 합니다. 지난해 7월 상법 개정에 따라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서 계열사 지원이 자칫 배임 리스크로 확대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번 회생 신청은 개정 상법 시행 이후 주요 그룹에서 확인된 첫 지원 중단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되면서 경영 의사결정의 정당성에 대한 입증 필요성이 커졌고 그룹 차원에서도 장기간 적자 누적과 재무구조 악화가 지속되는 계열사를 지원할 유인이 과거 대비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습니다.
다만 IPARK영창의 재무 악화가 HDC그룹 전반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HDC그룹은 "HDC 연결 매출 및 자산 대비 IPARK영창 비중은 각각 0.4%, 0.2% 정도이며 상호 연대보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시점에서 IPARK영창 회생절차 개시 신청이 HDC 및 계열사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그룹은 "회생절차를 통해 이해관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회사 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IPARK영창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룹 지원으로 버텨왔던 IPARK영창은 이제 모기업 도움 없이 독자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악기 시장 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IPARK영창은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요? '맑은 소리 고운 소리'가 또 들릴지 지켜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