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찾은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삼익가든 아파트(삼익맨숀)'. 1984년 준공돼 올해로 42세를 맞은 이 단지는 한눈에도 낡아 보였다. 벽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페인트칠이 빛바랬다. 좁은 복도엔 살림살이가 쌓여있었고 엘리베이터는 느리게 오르내렸다.
삼익맨숀은 최근 서울시 통합 심의를 통과하며 재건축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10개동 중 9개동만 새 옷을 입는다. 재건축에 반대한 '5동'을 빼고 가는 것이다. 상가를 배제하고 아파트만 재건축한 경우는 있지만 주거동을 존치한 채 사업을 추진하는 이례적인 사례다.
"시간 없다"…반대 동 빼고 잰걸음
삼익맨숀은 전용 57㎡(24평)부터 전용 146㎡(53평)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가장 큰 평수로 이뤄진 5동(60가구)과 갈등이 생기자 나머지 소유주들은 2021년 5동을 빼고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사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 2일 의결된 서울시 통합 심의에서 5동은 존치구역으로 명시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원의 공유물 분할 소송 결과에 따라 존치구역에 대해 별도 지번이 부여됐다"며 "1심 판결 이후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확정판결이 내려졌고 서울시는 이에 따라 심의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는 신속 추진을 모토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형 평수와 소형 평수 소유주 간 갈등은 이곳만의 일도, 오늘내일 일도 아니다. 감정평가, 추정 분담금 등을 두고 이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종전 자산 평가 때 거래 사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면적당 단가가 낮고 거래량이 적은 대형 소유주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대지 면적이 2배 이상이라도 시세는 2배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대지를 크게 내놓는 쪽에서는 늘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익맨숀 재건축 조합은 지난 4일 정기총회를 개최한 뒤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날부터 3년(연장 시 5년) 안에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지 않으면 정비구역이 해제되는 일몰제 시한을 앞두고 있어서다.
조합 관계자는 "5동은 사업 구역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이제 완전히 남의 단지나 마찬가지"라며 "우리와 재건축을 같이 할 거라 생각하고 매수하려는 거면 가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삼익맨숀 5동 전용 146㎡(53평) 물건은 지난 5월 17억7000만원(9층)에 거래됐고 다른 동의 전용 82㎡(34평) 물건은 올해 초 16억원(5층)에 손바뀜했다. 평당 가격은 후자가 1400만원가량 높다. 현재 호가는 두 평형 모두 최고 18억5000만원 수준이다.
삼익파크 손잡고 '써밋' 타운
5동이 재건축 사업에서 배제되면서 삼익맨숀의 재건축 후 단지 모양은 'C자'로 매우 특이해졌다. 조합은 이에 개의치 않고 바로 옆 '삼익파크 아파트'와 함께 대단지를 꾸린다는 계획이다. 두 단지 모두 대우건설의 하이엔드(고급) 브랜드 '써밋'이 강동구 최초로 적용된다. 삼익맨숀은 '써밋 이스티지(990가구)', 삼익파크는 '써밋 듀 포레(1384가구)'로 변신한다.
명일동과 길동에 걸친 삼익파크는 삼익맨숀 뒷단지(7~11동)와 붙어있다. 길 건너가야 하는 앞 단지보다 오히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삼익맨숀과 삼익파크는 2024년 건축협정을 맺은 뒤 커뮤니티 공유, 단지 연결 등을 논의 중이다.
삼익맨숀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삼익파크와 같은 '써밋'이니 외관상 하나의 단지처럼 보이게 지을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원하면 단지명을 통일하거나 1·2단지로 하는 식을 대우건설, 삼익파크와 협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속도가 훨씬 빠른 삼익파크는 미온적인 모습이었다. 삼익파크는 2031년 준공을 목표로 이달 이주를 개시했다. 이 조합 관계자는 "같이 하는 건 아니고 우리가 먼저"라며 "하나의 단지라기보다는 브랜드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삼익파크는 재건축 후 전용 84㎡(34평)를 분담금 없이 받을 수 있는 전용 130㎡(42평) 물건이 18억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아직 사업 초기 단계로 지하 연결 통로 설치와 커뮤니티 공유 계획은 논의 중일 뿐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라면서도 "마주 보고 있는 단지인 만큼 외관을 통일감 있게 조성해 하나의 대규모 단지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협의할 거면 이주 전에"
전문가들은 삼익맨숀의 '동 단위 제척' 사례가 다른 재건축 사업장으로 번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이곳도 결국 같이 정비사업을 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법무법인 심목의 김예림 변호사는 "조합 입장에선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반대 동이) 너무 방해되고 사업이 지연돼서 손해가 될 것 같다 싶으면 아예 빼고 가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토지분할 소송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니 웬만하면 같이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동 단위 제척 요건이 까다로운 점도 1~2개 동을 빼고 사업을 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혔다. 분리되는 토지·건축물 소유자 수가 전체의 10% 이하여야 하고 토지 위 건축물이 분할 선상에 위치하지 않아야 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여의도 삼부의 경우 1개동에서 동의율이 충족되지 않았는데 10분의 1이 넘어 제척할 수 없어 창립총회가 무산되기도 했다"며 "다들 지쳐서 이제는 좀 진척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지금은 압도적 동의율로 총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삼익맨숀 5동은 대지지분이 크지만 소유자 수가 10분의 1 이하라 제척이 가능했다"면서도 "5동이 오래 버티니까 조합이 강수를 둔 건데 모두 손해를 보는 치킨게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아직 이주하기 전이니 5동 소유주가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해서 다시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주가 시작되면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노선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전이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일동의 한 공인중개사 역시 "대형 평수 소유주들이 높은 추정 분담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이렇게 됐는데 한 동만 빼고 가는 것도 좀 웃기지 않냐"라며 "아무래도 나중에 조금씩 양보하면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