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헌법 제38조
종교의 자유와 납세의 의무가 충돌하고 있다. 종교인이 소득세를 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정부와 국회, 종교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위기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있기 때문에 국세청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지, 종교인도 국민으로서 세금을 내야 하는지 공방이 치열하다.
사실 소득세법에는 종교인의 납세 의무를 규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과세 조항도 없다. 그동안 종교인이 소득세를 안 내도 국세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자발적인 세금 납부라면 굳이 막지 않는 관행이 지속돼 왔다.
지난해 정부는 뒤늦게 종교인 과세에 대한 근거 규정을 만들었다. 소득세법 시행령(제87조)에 따르면 종교 종사자가 활동과 관련해 받는 금품은 기타소득의 80%를 필요경비로 한다. 올해부터 시행된 이 규정이 내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관심을 모으는데, 연말 국회에서 한 차례 교통 정리가 이뤄질 전망이다.
◇ 종교의 '면세' 특권
종교 활동과 관련한 세금은 대부분 면제 대상이다. 종교단체가 공급하는 재화나 용역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가 면제된다. 외국에서 수입한 종교 관련 재화에도 부가가치세가 붙지 않는다. 종교의식을 위해 외국에서 들여온 주류에 대해서는 주세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
종교의 발전을 위해 내는 돈도 세금 혜택이 있다. 종교를 목적으로 하는 신탁을 통해 공익법인 등에 출연하는 재산은 상속세나 증여세 과세가액에서 뺀다. 기업이 종교에 지출한 기부금은 소득금액의 10%를 비용(손금)으로 인정받고, 직장인도 종교단체에 기부한 금액을 연말정산 세액에서 15% 공제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세금에는 더욱 광범위한 면제가 적용된다. 종교단체가 부동산을 구입하면 취득세가 면제되고, 보유 단계에서도 재산세를 내지 않는다. 종교 목적 사업과 관련한 등록면허세, 주민세, 지역자원시설세까지 모두 면제 대상이다. 종교단체가 부동산을 사회복지사업에 사용하면 재산세와 지역자원시설세를 내지 않고, 노인복지시설로 운영할 경우에는 재산세의 절반을 깎아준다.
세법에서는 '종교' 목적이라는 명분만 있으면 세금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금은 신경쓰지 말고, 종교 활동에 전념하라는 의미다. 입법권을 쥔 국회에서도 유권자인 종교인들을 최대한 배려해왔다. 그나마 국민 여론에 이끌려 소득세에 한해 과세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나머지 종교 관련 세금은 앞으로도 별다른 제약 없이 면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 종교 세금은 '요지경'
종교에 대해서는 세금의 예외 규정이 많은 만큼, 과세 분쟁도 잦은 편이다. 종교단체가 낸 이익이 실제 종교 활동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를 놓고, 종교인과 과세당국이 대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인은 과세당국의 무리한 과세라고 주장하는 반면, 과세당국은 종교를 빙자해 세금을 피했다고 맞선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는 기숙사에 대한 재산세를 면제 받았다가 세금을 추징 당했고, 유치원을 종교 시설이라고 해서 취득세를 면제받은 교회도 과세당국에 포착돼 세금을 다시 냈다. 2011년 서울의 한 교회는 취득세를 면제받은 부동산을 임대했다가 뒤늦게 세금을 내야 했다. 교회 1층에 개인 명의로 커피숍을 냈다가 취득세를 통보 받은 목사도 있었다.
종교단체가 수익 사업을 하면 세금 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과세당국의 판단이다. 이들은 조세심판원을 통해 세금 부과가 억울하다고 주장했지만, 종교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과세 처분을 되돌릴 수 없었다.
종교단체로 허가받지 않은 교회를 다니는 직장인들은 기부금 소득공제를 받았다가 국세청으로부터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한다. 안양의 한 교회는 2010년 경기도에 종교단체 허가를 신청했지만, 공익을 해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 교회에서는 5년간 6000명이 넘는 신도에게 233억원의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했는데, 전국에 퍼져 있는 직장인 신도들이 연말정산 기부금 문제로 심판청구를 제기하면서 파장을 몰고왔다. 조세심판원은 해당 교회가 총회나 중앙회로 인정받지 못한 '미등록 단체'이기 때문에 기부금 공제를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