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에르메스의 상징, '에르메스 에토프 벌킨'입니다. 지금 예약해도 5년을 기다려야 하는 제품입니다. (…) 2250만원 지금까지 최고가입니다. 2300만원 확인하겠습니다. 2300만원 받았습니다. 2350만원 받았구요, 더이상 안계시면 2350만원에 마무리합니다."
지난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 행사장 무대 중앙에 서있던 경매사가 '2350'을 3번 외치고 의사봉을 '땅' 두드렸다. 1300만원에서 시작한 에르메스 가방이 불과 2분여만에 1000만원 이상 비싼 값에 팔렸다.
이날 롯데백화점은 창립 35주년을 맞아 K옥션과 함께 특별경매를 진행했다. 미술품·보석·요트·와인·호텔숙박권 등 총 175개, 시가 100억원에 달하는 물품이 나온다는 소식에 500여명이 몰렸다.
▲ 지난 5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매행사에 500여명이 몰렸다. |
하얀색 줄무늬 옷을 입은 한 여성은 경매가 진행되는 내내 볼펜으로 뭔가를 끄적이다 두어개 작품을 손에 넣었고, 감청색 점퍼를 걸치고 구부정히 앉아있던 40대 남성은 850만원짜리 그림을 낙찰받았다.
엄지손톱만한 귀걸이를 한 50대 후반의 중년 여성은 백남준 화백의 작품이 나오자 기다렸다는듯 노란색 팻말(특정가격에 사겠다는 의사표시)을 들었다. 하지만 전화로 응찰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했다. 가격이 2000만원까지 오르자 오른손을 가로저으며 그만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경매사가 "한번 더 하시겠어요?"라며 더 높은 응찰가를 부추긴 뒤였다.
이날 도상봉·정상화·하종현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미리 서면으로 응찰하거나 전화로 주문한 이들이 주로 가져갔다. 모두 수천만원짜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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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작품은 스페인 출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미술가와 모델(Clown et Femme Nue)'이 차지했다. 낙찰가는 9억5000만원. 이 그림의 낙찰자 역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0억원에 가까운 작품을 전화 한 통으로 가져갔다.
관심을 모았던 이중섭 화백의 '통영 앞바다'는 98번째 경매물품으로 나왔으나 주인을 찾지 못했다. 1972년 현대화랑 특별회고전에 출품돼 처음으로 이중섭이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경매사가 11억3000만원을 부르며 응찰을 유도했을 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롯데와 K옥션은 이 작품을 내세워 이번 경매를 홍보했다.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한 품목은 에르메스 가방이었다. 가방 3개가 차례로 나왔고 시작가에 비해 700만~1250만원 비싼 값에 모두 낙찰됐다. 시중에선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상품이라고 한다. 낙찰자가 선정됐을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롯데백화점은 이날 경매에서 얻은 수익금을 베트남 빈곤지역에 초등학교를 짓는데 사용할 예정이다. 롯데는 두달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높이 272m의 초고층 빌딩을 완공하는 등 베트남 진출에 공을 들이는 회사다.
두시간여의 경매가 끝나고 빠져나오는 사람들 틈에 하얀색 줄무늬 옷을 입은 여성도 포함돼있었다. 그는 같이 온 동료와 웃음을 나눴다. 밖에는 고급 화장품 부스와 외제차가 놓인 전시공간이 그들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