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9시45분 현대홈쇼핑은 치아보험을 1시간가량 판매했다. 이후 정수기 렌탈 방송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간대 GS홈쇼핑은 정수기 렌탈과 홈가드보험을, 롯데홈쇼핑은 암보험과 뷰티케어 렌탈 상품을 각각 팔았다. CJ오쇼핑은 타이어 렌탈 방송을 진행했다. 이날 '황금시간대'에 4대 홈쇼핑 채널이 모두 렌탈이나 보험상품을 팔았다는 얘기다.
안마의자나 자동차 등 렌탈제품이 뜨면서 홈쇼핑업계에 정액수수료방송(이하 정액방송)이 재조명받고 있다. 홈쇼핑회사가 납품업체에 방송시간을 통째로 파는 정액방송은 한때 홈쇼핑 '갑질'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렌탈시장이 커지면서 렌탈업체들의 요청이 많아 홈쇼핑 수익성을 보장하는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업계관계자는 "송출수수료 증가 등으로 홈쇼핑 비용 구조가 악화되는 가운데 렌탈과 보험, 여행 등 정액방송이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쇼핑 방송중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정률'과 달리 '정액'은 납품회사가 홈쇼핑회사의 방송시간을 사는 방식이다. 홈쇼핑입장에서 정액은 방송이 '쪽박'이 나더라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납품회사는 정액방송이 '대박'나면 수수료를 '정률'보다 아낄 수 있다.
롯데홈쇼핑이 지난 4월 방송한 롯데렌터카 생방송에서 업계 사상 최대인 6만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
현재 주요 홈쇼핑업체는 방송 1시간을 4000만~1억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홈쇼핑 관계자는 "홈쇼핑에서 1시간에 제품 3억원어치를 팔면 홈쇼핑이 받는 수수료는 9000만원 정도고, 여기서 비용을 빼고 나면 5000만원 정도가 순이익이 된다"며 "이 순이익이 정액방송 수수료 기준이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 정액방송이 등장한 때는 2004년 홈쇼핑이 보험을 팔면서부터다. 방송중 전화 상담이 곧 결제로 이어지지 않는 보험상품 특성상 정률 방식으로 수수료를 산정하기 힘들어지자 보험사가 방송시간을 통째로 사서 보험을 팔았다. 이후 정액방송은 납품회사가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 등으로 급성장했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홈쇼핑업체가 매출이 부진한 중소기업에도 정액방송을 강요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정액방송은 홈쇼핑 갑질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협력업체에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불공정거래가 개선되면서 정액방송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보험과 같이 방송이 끝난 뒤 상담사와 전화상담이 필요한 '무형상품'이 꾸준히 늘면서다. 특히 '빌려 쓰는 시대'가 열리면서 안마의자, 렌터카, 정수기 등 렌탈 상품이 정액방송 형식으로 홈쇼핑 황금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여행상품이나 한샘 주방시공 등 정액방송 형태로 판매되는 상품군도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 김용민 기자] |
정액방송중에 연결되는 주문전화가 실제 주문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렌터카가 3~4%, 안마의자가 30%가량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렌탈업체가 꾸준히 방송을 이어가는 이유는 '구매율이 낮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정수기 렌탄업체 관계자는 "홈쇼핑에서 꾸준히 정수기를 파는 이유는 투자 대비 판매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필터의 기능 등 제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홍보를 1시간 동안 할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홈쇼핑 업계에서도 정액 방송은 안정적인 수익처다. 홈쇼핑 업계관계자는 "송출 수수료 등이 오르면서 3만원짜리 상품을 팔아 프라임 시간대 수익구조를 맞추기 어려워졌다"며 "정액방송이 황금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액방송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액방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정액방송을 주목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중소기업 판매수수료 부담의 원인이 되는 중소기업 제품 정액방송은 전체 방송시간의 3.5%(2112시간)를 방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TV홈쇼핑이 정액방송 축소 등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주요 홈쇼핑업체들은 10% 내외로 정액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홈쇼핑 관계자는 "정액방송에 대해 홈쇼핑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중소기업에 갑질을 한다고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각이 있다"며 "하지만 홈쇼핑에서 렌탈 등 무형상품 판매가 늘수록 홈쇼핑 업계에서 정액방송의 상징성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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