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과 오너들의 갑질 논란은 잊을만하면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데요. '갑질'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건 한참 전 일이지만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고쳐보자는 여론이 생긴 건 약 6년 전 일입니다.
지난 2013년 5월 남양유업의 한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주를 상대로 욕설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이 떠들썩했는데요. 여기에다 대리점주가 주문하지도 않은 물량을 떠넘긴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급기야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안이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 해당 기업에도 큰 타격을 줍니다. 토종 피자 브랜드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MP그룹은 지난 2015년 이후 갑질로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된 데다 피자 프랜차이즈 업계의 불황까지 겹치면서 사세가 급속도로 기울었고, 결국 상장폐지 위기로 내몰려 있습니다.
남양유업 역시 갑질 논란 이후 암흑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불매운동 등과 맞물리면서 2년간 영업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이후 실적이 다시 살아나는가 싶더니 최근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은 데 이어 사업 다각화마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다시 주춤하는 모습입니다.
그나마 과거 갑질 논란에 따른 직접적인 불매운동의 영향권에선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 남양유업은 대리점주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대리점들과 함께 연탄배달에 나서는 등 '상생'을 위해 나름 노력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습니다. 남양유업 제품에 이물질이 들어있다는 얘기가 인터넷게시판 등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건데요.
실제로 지난해 10월 분유에서 코털과 코딱지로 보이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루머가 퍼졌습니다. 남양유업은 발끈했습니다. 분유 제조 공정상 이물질 혼입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는데요. 세스코 식품안전연구소와 고려대 생명자원연구소에 정밀검사를 의뢰해 이를 확인했다고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기자들과 함께 분유 공장을 방문하는 등 자신감을 내비쳤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아동용 음료에서 곰팡이가 나왔다고 합니다. 종이캔의 일종인 카토캔이라는 용기를 사용한 '아이꼬야 우리아이주스' 제품인데요. 남양유업은 이 제품의 판매를 전면 중단해야 했습니다.
제조과정이나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배송 과정 중 외부 충격으로 핀홀(Pin Hole: 바늘구멍)현상이 발생했고, 내용물과 외부 공기가 접촉하면서 곰팡이가 생겼다는 게 남양유업의 해명입니다.
앞서 갑질 논란으로 '기업문화'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던 남양유업은 이번 사건으로 제품 신뢰도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남양유업이 제품 판매 전면 중단을 선택한 이유도 그만큼 위기감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가 절실한 때인 겁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남양유업의 수장이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1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했습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를 지냈던 이정인 전 대표인데요. 그가 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어서 업계에선 남양유업이 끊이지 않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전 대표는 지난해 말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돌연 사퇴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앞서 갑질 논란 직후인 지난 2014년 취임했던 이원구 전 대표 역시 돌연 사퇴했던 걸 고려하면 남양유업의 내부 분위기가 계속 어수선하다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양유업은 국내 우유 및 분유시장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갑질 논란이 불거진 후 벌써 햇수로 7년째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부정적인 여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아무래도 기업의 경쟁력도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전히 수장이 없이 굴러가는 남양유업이 이번엔 어떤 위기 타개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