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했다. 1위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그 사이 수입맥주가 치고 들어왔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하이트진로의 새로운 맥주 '테라(TERRA)'에는 이런 절박함이 담겨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사력을 다했다.
13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하이트진로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는 김 대표의 반성과 비장함으로 시작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하이트진로의 맥주사업은 치열한 경쟁, 수입맥주의 파상공세, 소비자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들이 겹치면서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이제 '테라' 출시를 통해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
'테라'는 하이트진로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제품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5년간 '테라' 출시를 준비해왔다. 하이트진로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맥주다. 그런 만큼 기존의 라거(Lager) 맥주와는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원재료부터 부재료, 제품 라벨, 병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심지어 '테라'의 전면에는 하이트진로 상표조차 없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의 콘셉트를 '청정라거'로 잡았다. 호주 중부의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골든트라이앵글의 맥아를 100% 사용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2년간 청정지역에서 재배되는 맥아를 찾기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그렇게 최종 낙찰된 곳이 호주의 골든트라앵글이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공기 질이 좋기로 유명한 호주에서도 최상의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여기에 풍부한 수계와 최적의 강수량 및 일조량을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현무암을 기반으로 한 비옥한 검은 토양은 하이트진로가 내세우는 '청정'콘셉트에 어울리는 보리를 생산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맥주의 톡쏘는 맛을 담당하는 탄산도 리얼 탄산을 사용했다. 다른 맥주 제품들과 달리 '테라'엔 자연발효 시 발생하는 리얼탄산을 100% 사용했다. 라거 특유의 청량감을 높이고 거품이 조밀한 것이 특징이다.
병 디자인도 바꿨다. 이를 위해 하이트진로는 전 세계의 맥주병 250여 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병목과 바디의 비율을 1대 1.618로 잡았다. 1대 1.618은 피타고라스의 황금비율이다. 더불어 병 디자인에 회오리 문양을 넣어 기존 병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색깔도 '맥주병=갈색'이라는 공식을 깨고 국내 레귤러 라거 중에는 처음으로 녹색으로 잡았다. '테라'의 콘셉트인 자연, 청정 이미지와 맞추기 위해서다.
라벨에도 변화를 줬다. 주라벨은 물론 병목 라벨도 각각 100여 종을 두고 스터디를 진행했다. '테라'의 주라벨은 오로지 '테라'만을 강조했다. 골든트라이앵글을 상징하는 역삼각형 모양의 라벨을 채택했다. 얼핏보면 수입맥주와 비슷한 디자인이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마치 하이네켄이나 칭다오 맥주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의 가격을 기존 맥주와 동일하게 책정했다. 원재료 등 가격 상승 요인이 충분히 있지만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소비자들의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은 물론 저변 확대를 고려한 마케팅 정책으로 보인다.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 상무는 "원가 상승 요인이 많지만 더 많은 소비자가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수익성 부문은 일정부문 감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번 '테라' 출시로 일각에서는 하이트진로가 현재 운영 중인 맥주 브랜드 중 일부를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테라'와 일부 제품 간 간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오 상무는 "앞으로는 유흥채널에서는 하이트와 테라, 가성비를 중시하는 가정에서는 필라이트로 가는 삼각구도로 움직일 것"이라며 "브랜드의 존폐 여부는 전적으로 소비자와 시장의 판단에 맡길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의 주타깃을 밀레니얼 세대로 잡았다. 유행과 환경에 민감한 세대다. 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 좀 더 쉽게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청정' 콘셉트를 강조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맥주를 지향한다. 알코올 도수를 4.6%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맥주의 경우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만큼 극단적 변화보다는 큰 틀 안에서 차별화에 중점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테라'는 하이트진로가 잃어버린 맥주 시장을 되찾을 핵심 무기다. 5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심혈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점유율 1위인 오비를 따라잡고 치고 올라오는 수입 맥주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테라'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물론 생각처럼 시장에 제대로 안착할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오 상무는 "'테라'는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됐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같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국산 1위 맥주와 수입맥주의 양강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신제품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토종 주류기업의 자존심을 걸고 만들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올해 안에 두 자릿수 점유율을 가져가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도 "'테라'는 하이트진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라며 "소주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기반과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동력을 발판 삼아 맥주 시장에서 다시 한번 하이트진로의 성공신화를 쓰고 하이트진로의 저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