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이 '먹는 물' 시장에 진출한다. 국내 먹는 물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소위 빅4로 불리는 업체들이 전체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시판 중인 생수 브랜드만 300개가 넘는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시장에 지난 60여 년간 과자만 만들어왔던 오리온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왜일까.
◇ 이유있는 '뜬금포'
오리온은 지난 2017년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과자에만 국한됐던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글로벌 시장을 노리겠다는 선언이었다. 생수 시장 진출은 그 일환이다. 오리온 입장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 셈이다. 새로운 길에는 늘 위험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오리온은 지난 3년간 치밀하게 생수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 오리온이 선보인 '제주 용암수'는 그 결과물이다.
오리온의 생수 시장 진출은 허인철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다. 허 부회장은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년 6개월 전쯤 지인의 소개로 제주도 삼다수 밑에 71억톤의 제주 용암수가 40만 년 전부터 잠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소개했다. 신사업을 구상하던 허 부회장에게 용암수는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평소 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만큼 제대로 상품화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부회장은 곧바로 생수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생수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니 용암수 제조 인가를 받은 업체부터 알아봤다. 마침 제주 성산에 위치한 용암해수산업단지 내에는 두 곳의 용암수 제조 인가 업체가 있었다. 6개월을 설득한 끝에 한곳을 인수했다. 2016년 오리온이 인수한 제주용암수다. 이때부터 오리온은 본격적인 용암수 개발 작업에 나섰다.
제주용암수 인수 후 오리온은 용암수 제품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신덕균 오리온 음료마케팅팀 팀장은 "사업 착수와 동시에 제품을 만드는 데에 3년을 보냈다"면서 "공정, 규모는 물론 용암수가 갖고 있는 천연 미네랄을 추출해 블렌딩하는 작업 등 오리온 제주용암수에는 세계 최초 사례와 기술력이 오롯이 담겨있다"라고 강조했다.
◇ 에비앙, 한번 붙어보자
오리온은 오리온 제주 용암수를 출시하면서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국내 생수 1위인 삼다수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미네랄워터로 이름 높은 '에비앙'을 겨냥했다. 에비앙이나 피지워터와 비교해 절대로 밀리지 않는 품질을 갖췄다는 것이 오리온의 설명이다. 오리온의 이런 자신감은 용암수가 갖고 있는 특징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오리온 제주 용암수의 원수(原水)는 말 그대로 '용암수'다. 제주도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다. 섬이 만들어질 당시 다량의 바닷물이 제주의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제주의 암반은 현무암으로 이뤄져 있다. 이 바닷물이 40만 년 동안 현무암과 맞닿으면서 자연스럽게 정화, 순화된다. 이 과정에서 현무암에 포함돼있는 칼슘, 칼륨, 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들이 용암수에 녹아든다. 오리온 제주용암수에 미네랄 함유량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네랄 함유량이 높으면 물 맛에 영향을 준다. 박천호 오리온 연구소 상무는 "미네랄 함량이 높아지면 물맛이 달라진다. 마그네슘 함량이 높을수록 물에서 쓴맛이 나고 무겁다. 미네랄 함량을 마냥 높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리온은 원수를 취수(取水)해 7번의 필터링을 거친 청정수를 따로 모아둔다. 여기에 원수를 끓여 증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미네랄들을 모아 섞는다. 오리온만의 블렌딩 기술이 여기에 들어간다.
오리온은 물 맛을 잡기 위해 마그네슘의 함량을 줄이고 대신 칼슘의 함량을 높였다. 이를 통해 풍부한 미네랄 양은 물론 맛까지 잡았다. 오리온 제주 용암수의 미네랄 함량은 300ppm이다. 에비앙은 290ppm, 피지워터는 150ppm이다. 오리온 제주용암수가 앞선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리온 제주 용암수는 '약알칼리성'물이다. 국내 시판 생수의 PH 농도는 7~7.7인 반면, 오리온 제주용암수는 8.1~8.9다. 오리온이 품질로 에비앙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다.
◇ '제2의 초코파이 신화' 쓴다
오리온이 생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자 일각에선 해외용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오리온이 경쟁이 치열한 국내 생수 시장이 아닌, 탄탄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중국 등을 노리고 생수 시장에 진출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오리온이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은 맞다. 하지만 국내 시장을 외면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오리온의 설명이다.
허 부회장은 "오리온이 해외 판매만 하기로 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판매하지 않는 물을 어떻게 해외 시장에 판매하겠는가"라며 "제품을 만들어서 에비앙과 경쟁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물을 사서 팔겠다는 곳이 있으면 지구 어디라도 팔 것이다. 매출 제고를 위해 시장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리온은 오리온 제주용암수를 국내 다른 생수보다 30㎖ 많은 530㎖로 선보였다. 국내 1위 제품인 삼다수나 아이시스8.0 등은 500㎖다. 오리온이 530㎖ 제품을 내놓는 것은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해외에서는 주로 530㎖ 전후 제품이 표준이다. 가격은 편의점 기준 삼다수보다 50원 비싼 530㎖ 한 병에 1000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리온 제주용암수는 12월 1일 530㎖ 제품이 정식 출시된다. 12월 말에는 2ℓ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후 330㎖, 1.5㎖ 제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아울러 국내 시장에서 안착한 이후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등으로 시장을 확대한다는 계산이다. 허 부회장은 "외부 전문가들과 함을 합쳐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물을 만들었다"면서 "물이 성공 가능성이 보이면 다른 음료로 확장 가능성도 있다. 음료 사업의 밀알이 돼 향후 큰 그림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