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은 전국 6577개 지역에서 1억 2000만 나눔과 소통의 연결을 통해 21세기형 동네 생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중고거래 앱 업체인 당근마켓은 지난해 말 이른바 '연말 결산' 자료를 내놨습니다. 당근마켓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래를 하고 소통을 했는지에 대한 통계입니다. 지난해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를 비롯해 무료 나눔, 정보공유 등을 통해 총 1억 2000만 번의 이웃 간 '연결'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당근마켓 이용자 수는 불과 1년 사이에 세 배가량 성장해 약 1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용자 수도 그렇지만 이제 당근마켓은 워낙 많은 이들에게 거론되니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당근마켓을 단순히 '중고거래 앱'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근마켓 측은 자사를 소개할 때 '중고거래 앱'이라고 하지 않고 '지역생활 커뮤니티'라고 표현합니다. 왜일까요?
당근마켓 앱을 시작하려면 우선 '내 동네'부터 설정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주요 서비스인 중고 거래를 지역 기반으로 하게끔 합니다. 기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전국 곳곳의 물품들을 확인해 선택하고, 거리가 너무 멀 경우 택배로 받고는 했는데 당근마켓에서는 주변 이웃들이 올리는 물품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볼 수 있는 중고 물품이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당근마켓이 지금처럼 인기가 있지 않았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자칫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수도 있고요. 회사 입장에서는 사업 초반부터 리스크가 있는 선택입니다. 그런데도 당근마켓이 이런 식의 운영을 고집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근마켓 앱에는 중고거래뿐만 아니라 '동네생활', '내근처'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네생활은 말 그대로 동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 동네에 머리를 잘 하는 미용실은 어디인지, 어느 집 떡볶이가 맛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이 올라옵니다. 물론 그냥 집에서 만든 떡만둣국 사진 올리면서 맛있었다는 소소한 일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동네 SNS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근처'에서는 동네 가게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이 서비스는 동네 가게들과 주민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서비스입니다. 배달앱처럼 이 서비스를 통해 음식 등을 직접 주문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동네 전단지 정도의 정보들이 올라옵니다. 카페 오픈 기념으로 아메리카노를 1000원에 판매한다든지 하는 소소한 정보입니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당근마켓이 정말 하려는 게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중고거래 앱'이 아니라 '지역생활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겁니다.
이는 당근마켓의 수익구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고거래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중간중간 소소한 지역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이사 업체나 동네 병원 등이 올리는 광고입니다. 당근마켓은 이 광고들을 통해 돈을 법니다. 이용자가 1200만 명이나 되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광고를 하려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당근마켓은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 광고보다는 지역 업체 광고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의 이런 전략은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이용자 한 명당 월평균 방문 횟수는 24회라고 합니다. 거의 매일 들어가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통 경쟁 사이트인 '중고나라'에 이렇게 자주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인 쿠팡에도 물건이 필요할 때만 들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에는 왜 이렇게 들락날락거리는 걸까요. 그것은 이 사이트가 실제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근마켓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자 지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동네 마케팅 시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른바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닐 수 있는 권역)'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갈 수 없으니 동네 생활이라도 알차게 해보자는 겁니다. 당근마켓은 이런 시대에 적합한 앱으로 여겨집니다.
얼마 전에는 네이버 카페가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이웃 서비스'라는 이름의 서비스입니다. 이용자가 '관심 지역'을 설정하면 주변의 '지역 기반 카페'의 소식을 모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내 주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을 모아 볼 수 있고요. 근처에서 바로 거래할 수 있는 카페 중고거래 게시물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네이버는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함에 따라 집에서의 체류시간이 늘어나고, 활동 및 소비 역시 내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웃 소식에 대한 사용자의 니즈가 높아져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네이버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 기반 온라인 플랫폼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봤던 겁니다. 네이버 외에도 여러 플랫폼 기업들이 이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어쨌든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네를 알차게 즐길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에는 유명 관광지의 맛집 정보는 알아도 동네 맛집은 잘 모르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이런 서비스들을 통해 앞으로 어떤 '동네 문화'가 만들어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