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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요거트 뚜껑'에 집착하는 이유

  • 2021.08.15(일) 10:00

[食스토리]요거트 뚜껑 둘러싼 논란
특수 코팅 기술로 '묻지 않는 뚜껑' 늘어

/그래픽=비즈니스워치.

[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요거트 뚜껑에 뭍은 요거트를 핥아먹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 본인 SNS에 올라온 "회장님도 요플레 뚜껑을 핥아 드시나요?"라는 질문에 당연한 듯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죠. 지난해에는 오뚜기 오너가의 3세이자 연예인으로 활동 중인 함연지 씨도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는다고 고백(?)해 이슈가 됐었습니다. 함 씨에 따르면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느냐는 질문을 그렇게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요플레는 정확히 말하면 떠먹는 요구르트, 혹은 '요거트'라 불리는 제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빙그레의 요플레가 인지도가 높아 요거트의 대명사처럼 쓰이곤 합니다. 사실 저도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습니다. 물론 궁금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재벌에 대해서는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는지 궁금해하는 걸까요. 과연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가 뚜껑에 남은 요거트를 핥아먹는 것은 아까워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뚜껑에 요거트가 뭍어있는 상태로 버리면 안될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들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가끔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고 있으면 "그러지 말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가 아까워서 그렇게까지 먹느냐는 의미이겠죠. 아니면 보기에 좋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요.

한 유명 유튜버는 얼마 전 이 주제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과연 뚜껑에 묻은 요거트의 양은 얼마나 될까 하는 실험입니다. 그 결과 80g 제품 기준으로 뚜껑에는 약 2g이 묻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40개의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어야 요거트 한 개를 먹는 셈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아까워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닐 듯도 싶습니다.

'공대생 변승주 DS'라는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 요거트 뚜껑에 묻은 양을 재는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물론 최태원 회장이나 함연지 씨도 단순히 아끼기 위해 그러지는 않겠죠. 요거트 뚜껑 핥아먹기는 일종의 소소한 문화, 혹은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습관이랄까요. 어려서부터 그래왔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겁니다. 혹은 그냥 요거트가 거기에(뚜껑에) 있어서 먹는 걸 수도 있고요. 뚜껑에 묻었다고 요거트가 더러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냥 먹는 겁니다. 

별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실 수년 전부터는 뚜껑에 요거트가 묻지 않는 신기한(?) 제품들도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을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건데요. 

서울우유는 지난 2012년 '발수 리드'라는 특수코팅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발수(撥水)'는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리드(Lid)는 뚜껑을 의미하고요. 이 기술은 '연잎'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연잎은 물에 잘 젖지 않습니다. 연잎 표면에 아주 미세한 돌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을 튕겨내는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요거트 뚜껑에도 이런 기술이 적용된 겁니다.

발수(撥水) 리드 기술이 적용된 제품(오른쪽)과 아닌 제품. /사진=나원식 기자.

이후 경쟁사들도 발수기술을 적용한 요거트 뚜껑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동원그룹의 포장재 제조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가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서 국내 일부 유제품 업체들에 '뚜껑'을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  hy(옛 한국야쿠르트) 등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요거트가 묻지 않는 뚜껑을 흔히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거트가 묻지 않는 뚜껑을 두고 요즘 말로 '갬성'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뚜껑을 핥아먹는 것이 일종의 재미였는데 이런 기회를 '박탈'한다는 농담 섞인 지적입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박탈된 건 아닙니다. 아직도 여러 제품이 요거트 뚜껑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요거트의 상징처럼 불리는 '요플레'가 대표적입니다. 요플레는 여전히 뚜껑에 요거트가 묻습니다. 빙그레는 "뚜껑 재질을 당장 바꿀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왜 뚜껑에 요거트가 묻느냐'는 항의가 빗발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런 민원은 없었다고 하네요.

되레 뚜껑을 '애정'하시는 분들이 많아 기존 재질을 유지한다는 업체도 있습니다. 매일유업이 그렇습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여러 의견들을 들어봤을 때 묻어 나오는 경우를 더 선호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요거트 뚜껑에 진심인 분들에게 또 다른 희소식도 있습니다. 일부 제조사들이 '요거트가 묻지 않는 뚜껑'을 적용하는 것은 바로 환경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요거트가 묻은 채로 뚜껑을 버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썩기 시작합니다. 냄새도 나고 환경에도 좋지 않겠죠.

그렇다면 이런 논리가 가능해집니다. 뚜껑을 핥는 것은 일종의 '친환경'적인 행위라고 말이죠. 재미를 위해, 또 환경을 위해 이젠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마음껏 뚜껑에 묻은 요거트를 핥아도 되겠습니다.

*[食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픈 콘텐츠입니다. 평소 음식과 식품, 약에 대해 궁금하셨던 내용들을 알려주시면 그 중 기사로 채택된 분께는 작은 선물을 드릴 예정입니다. 기사 아래 댓글이나 해당 기자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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