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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④오징어땅콩 성공 이끈 '마케팅 비법'

  • 2021.12.09(목) 13:00

출시 직후 신인 배우 이덕화 씨 전면 배치
'익숙한 맛'으로 일상에 스며드는 전략 구사
미투 제품 봇물…'증산·마케팅'으로 대응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가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 중계를 볼 때 치킨을 주문하고 자기 전에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보는 것처럼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의 '규칙'은 대부분 정해져 있습니다. 축구를 볼 때 주문하는 치킨 브랜드는 정해져 있습니다. 침대에서 영상을 볼때 보는 유튜브도 거의 대동소이하죠.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답은 늘 한결같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이어서 입니다. 딱히 고민하지 않는 일이죠. 46년째 우리 곁에 있는 오징어땅콩도 마찬가지입니다. 맥주 안주로 과자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둥근 오징어땅콩을 허공에 던진 후 입으로 받아먹으며 놀아보기도 했고요. 우리가 오징어땅콩에 이렇게 젖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마케팅'의 힘입니다.

같은 전략, 다른 접근

1971년 농심이 내놓은 새우깡은 과자 시장을 변화시킵니다. 양갱이나 캬라멜을 제외하면 과자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펼쳐지던 경쟁을 '브랜드' 중심으로 바꿔놨습니다. 당시에는 새우깡처럼 '원재료'를 앞세운 네이밍 전략의 효과가 컸습니다. 상품을 알리는 창구도 바뀝니다. TV가 보급되면서 신문 광고에서 TV 광고로 이동합니다. 5년 후인 1976년 오징어땅콩이 탄생했을 무렵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새우깡이나 오징어땅콩은 특별한 '광고'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제품명부터 원재료를 어필한 만큼 '마케팅 포인트'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오징어와 땅콩은 오래 전부터 친숙했습니다. 1970년 1월 24일 한 신문의 '명절 백화점 쇼핑 가이드' 기사에는 오징어와 땅콩이 '안주 선물세트'로 소개돼있기도 합니다. 오징어땅콩은 출시 전부터 이미 정체성이 정해져 있던 겁니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오징어땅콩과 새우깡의 광고는 '콘셉트' 부터 달랐다. /사진=각 사

하지만 동양제과(현 오리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리온은 오징어땅콩 론칭과 함께 대대적인 TV 광고를 진행합니다. 모델로는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신인배우 이덕화 씨를 발탁합니다. 이는 새우깡과는 다른 전략입니다. 새우깡은 출시 직후 희극인 고(故) 김희갑 씨를 모델로 발탁했습니다. 이는 젊은 이미지보다는 신뢰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업체의 타깃과 방향이 달랐던 겁니다.

실제로 두 제품의 광고 방식은 다릅니다. 새우깡은 초기 광고에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비싼 원물이던 새우를 넣었다는 점을 강조했죠. 반면 오징어땅콩의 광고는 원물을 어필하지 않습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이덕화 씨가 오징어땅콩을 공중에 던지며 즐겁게 먹을 뿐입니다. 오리온은 이 광고를 통해 오징어땅콩에 젊은 이미지를 불어넣습니다. 이런 전략은 젊은 층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큰 인기를 끕니다.

친숙하지만 묵직하게

오징어땅콩은 시간이 갈수록 승승장구하면서 오리온의 효자 상품이 됩니다. 제조 방법이 어려워 한동안 경쟁 제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오징어땅콩은 땅콩 위에 반죽을 약 28번 입혀 만듭니다. 이 공정은 2000년대 이전까지 '수동'이었습니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때문에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미투 제품이 나타나지 않았던 겁니다.

이 시기 오징어땅콩의 마케팅 전략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기존의 전략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오리온은 매번 당대의 젊은 배우들을 오징어땅콩의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을 광고에 담았습니다. 던져 먹는 '시그니처 무브'도 꼬박꼬박 삽입했죠. 이 때까지는 역사가 엄청나게 길었던 것도 아닌 만큼 역사성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2006년 오리온은 '진품' 광고를 내보냅니다. /사진=오리온

상황은 2000년대 들어 바뀝니다. 제조 공정 발전으로 오징어땅콩 미투 제품이 등장합니다. 롯데와 해태가 비슷한 제품을 내놨습니다. 오리온은 '증산(增産)'으로 대응합니다. 2004년부터 전면 자동화 공정을 적용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습니다. 또 다양한 맛의 오징어땅콩을 선보이면서 확장에 나섭니다. 정체성은 지키고 새로움은 추가하는 시도였죠. 덕분에 오징어땅콩은 미투 상품과의 경쟁 속에서도 오히려 매출이 크게 늘어납니다.

아껴뒀던 '역사'카드도 이 즈음 꺼내듭니다. 오리온은 2006년 오징어땅콩의 새 광고를 내놓습니다. 이 광고에는 '30년 진품'이라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패키지도 리뉴얼됩니다. 전면에 바다와 오징어를 등장시키며 '원물'을 강조합니다. 패키지 후면에는 제조 공정을 담아 기술력을 어필합니다. 소비자들은 처음으로 오징어땅콩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됐죠. 2010년에는 '오땅월드' 홈페이지를 개설해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데 집중합니다.

'낡음' 벗고 '젊음'으로

오징어땅콩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1월 오징어땅콩의 주요 생산기지인 이천공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합니다. 총 5개의 생산 라인 중 4곳이 전소됐습니다. 오징어땅콩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경쟁사들이 시장을 파고들었습니다. 매대를 미투 제품이 채웠고 TV 등에서도 활발히 광고가 진행됐죠. 오징어땅콩 역사상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생산이 막힌 만큼 대응도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원조'의 힘이 발휘됩니다. 오리온은 2016년 6월부터 익산공장에서 오징어땅콩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증산을 단행, 생산량을 30% 늘렸습니다. 미투 상품들을 밀어내기 위해 물량 승부에 나선 겁니다. 그 결과 오징어땅콩은 1년만에 '왕좌'에 복귀합니다. 전년 대비 매출이 2배 가까이 올랐죠. 차별화된 품질과 친숙한 마케팅으로 쌓아둔 이미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오징어땅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사진=오리온

이 때부터 오징어땅콩은 더욱 빠르게 젊은 스낵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2017년 '간장와사비맛', 2018년 '고추장마요'에 이어 2019년에는 '마라맛'까지 선보였죠. 특히 2018년에는 ‘고로케땅콩’이라는 파생 제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제품에 트렌드가 담기기 시작합니다. 이들 제품은 편의점을 중심으로 유통됐습니다. 맥주와 묶음 판매가 진행되기도 했고요.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징어땅콩은 '오래된 제품'입니다. 하지만 시대와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미지는 지켜냈습니다. 덕분에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반백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일 겁니다. 앞으로 우리는 오징어땅콩하면 무엇을 떠올릴까요. 오징어땅콩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문형국 오리온 마케팅 매니저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역사와 품질로 쌓은 50년 역사"

문형국 오리온 마케팅 매니저.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오리온 마케팅실에서 스낵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 문형국입니다. 현재 오징어땅콩, 꼬북칩, 썬 등 제품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징어땅콩이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짭짤한 풍미의 오징어맛과 고소한 땅콩의 조화로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점인 것 같습니다. 또 대부분 스낵이 얇은 칩 또는 긴 제형인데 비해 오징어땅콩은 '볼(Ball)' 타입의 독특한 형태로 출시 직후부터 주목받았습니다. 여기에 땅콩 위에 반죽을 더한 이중 구조를 통해 색다른 재미와 식감을 선사한 점도 주효한 것 같습니다.

-오징어와 땅콩을 같이 먹은 것은 오래됐지만, 오징어땅콩과의 맛은 다소 다릅니다. 이 다른 둘을 하나로 만들고자 했던 배경이 궁금합니다.

▲오리온은 1972년부터 땅콩을 주원료로 하는 과자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해외 설비를 도입했지만 기술 부족 등 원인으로 독특한 제품을 개발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진미스낵', '백설스낵' 등의 연이은 실패도 겪었죠. 이에 '맛튀김 개발팀'과 '오징어 스낵 개발팀'을 신설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신제품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여기서 오징어 스낵 개발팀이 땅콩과 오징어의 결합을 생각해내며 제품이 탄생했습니다. 과자인 만큼 색다른 맛과 식감을 주는 것에도 집중했죠.

-오징어땅콩은 눈에 띄는 마케팅을 자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에 자리잡은 비결은 뭘까요.

▲품질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영업에 힘쓴 것입니다. 오징어땅콩은 보통 동네 마트 등의 맥주 진열대 옆에 인접해 진열됩니다. 그리고 가성비 혜택을 제공하는 '삼묶음' 제품 등도 마트에 집중 공급하고 있습니다. 안주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주류 구매시 자연스럽게 연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이었습니다. 또 오징어땅콩이 사랑받으면서 개인 마트 점주들께서는 자체적으로 팝업 진열을 해주시는 등 감사한 협조도 이어졌었습니다.

-오징어땅콩이 특히 인기를 끄는 장소가 있을까요.

▲일단 안주 시장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특이한 점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과자로 꼽힙니다. 볼 타입 형태로 한 입에 먹기 편하고, 바삭 깨물면 졸음을 없애주는 효과까지 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오징어땅콩은 많은 유사품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핵심 원동력은 결국 맛과 품질입니다. 2016년 이천 공장 화재 당시 경쟁사들이 미투 제품을 엄청나게 쏟아냈습니다만, 얼마 후 생산이 재개되자 빠르게 매출이 회복된 바 있죠. 이를 보면 아무리 이름과 패키지가 비슷해도 소비자들께서 품질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리온의 오징어땅콩을 최고로 인정해 주시는 것 아닐까요(웃음). 또 이것이 오징어땅콩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오징어땅콩의 마케팅 전략은 어떨까요.

▲소비자와 지속적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는데요. 때로는 오징어땅콩에서 땅콩을 빼 달라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당장 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벤트성 상품을 내놓을 계획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과 이벤트 등을 통해 오징어땅콩의 젊은 이미지를 점차 강화해 나가려고 합니다.

-긴 역사와 큰 매출을 가진 상품의 마케팅을 담당하시는 데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오랜 전통은 자칫 올드하거나 정체된 브랜드로 인식되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제 역할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탄생할 재미있는 후속작들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오징어땅콩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또 다른 연령층의 소비자들에게도 오징어땅콩을 통한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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