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수십 년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를 만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입맛도 바뀌고 취향도 바뀌기 때문이죠. 잘 나가던 브랜드가 10년 후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가 하면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품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 스테디셀러가 동시에 베스트셀러일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요. 한 아이가 과거 초등학교인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 '1등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그 아이가 어른이 돼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그 자녀도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확률 말입니다. 정확히 계산을 할 수는 없겠지만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바로 롯데제과의 월드콘입니다. 1986년 출시됐으니 어느덧 나이가 40살이 다 돼 갑니다. 출시 3년 차인 1988년부터 콘 아이스크림 1위가 됐고 1996년 빙과 전체 1위를 차지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2022년이 된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매출 1위를 다투는 현역입니다.
월드콘은 어떻게 30년 넘게 아이스크림 시장의 왕좌를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마흔 살 아저씨와 일곱 살 꼬마의 입맛을 모두 잡는 그 맛의 비밀은 뭘까요. 월드콘이 '뭐니뭐니해도 맛있을 수' 있었던 비결, 지금 살펴봅니다.
와플콘에 초콜릿 듬뿍 담았더니
콘 아이스크림에서 가장 중요한 원재료는 바삭바삭한 콘일 겁니다. 콘 아이스크림을 아예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이유가 있죠. 고소한 콘은 아이스크림의 맛을 더 강화시켜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안 먹느니만 못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눅눅해져버린 콘과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다 보면 1+1이 2가 아닌 0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월드콘에서 가장 중요한 제조 과정 역시 이 바삭바삭한 콘을 완성하는 작업입니다. 월드콘은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제품이 아닌, 시중에 몇 달 이상을 유통해야 하는 제품입니다. 그런만큼 콘의 바삭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가 맛의 핵심입니다.
월드콘은 내부에 초콜릿 코팅을 입혀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콘 상태로 말려 있는 와플콘이 공장에 들어오면 초콜릿 스프레이를 이용해 내부에 초콜릿을 씌웁니다. 내부에 초콜릿을 얇게 입힌 콘에 노즐로 아이스크림을 채워 넣으면 차가운 아이스크림 덕분에 초콜릿이 굳으면서 코팅이 됩니다. 아이스크림의 수분은 초콜릿 코팅에 막혀 콘으로 흡수되지 못합니다. 만든 지 몇 달이 지난 제품도 바삭하게 먹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과정에서 초콜릿을 조금 더 넉넉히 담으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초콜릿 꼬다리'가 됩니다. 콘에서 흘러내린 초콜릿이 뾰족한 콘 아래쪽에 모인 겁니다. 밑부분 3.5㎝를 초콜릿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 초콜릿 디저트로 입가심을 하는 느낌을 줬습니다. 부라보콘과 경쟁하는 월드콘만의 차별화 포인트였죠.
바닐라 맛의 비밀
쿠앤크·딸기·모카 등 다양한 맛이 나오고 있는 월드콘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근본'은 바닐라 맛일 겁니다. 가장 먼저 출시된 맛도 바닐라 맛일 뿐더러 월드콘 전체 매출의 80%를 바닐라 맛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죠. 바닐라맛 월드콘은 바닐라빈 중 최고급이라는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를 사용해 풍부한 맛을 살렸습니다.
고급 재료를 사용했으면 그 다음은 '밸런스'입니다. 유지방과 우유단백질의 밸런스는 맛과 향, 식감을 결정짓습니다. 아이스크림에 공기를 불어넣는 '오버런' 비율은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을 책임지죠. 흔히들 변하지 않은 완벽한 비율이라는 의미로 '황금 비율'이란 말을 쓰지만 월드콘의 황금 비율은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트렌드는 공기 함유량을 높인 '더 부드러운 맛'입니다.
월드콘이 처음부터 바닐라 맛으로 기획됐던 건 아닙니다. 출시 직전까지도 3~4가지 맛의 시제품을 만들며 테스트를 이어갔죠. 바닐라 맛은 물론 밤 맛, 팥 맛 등이 최후까지 출시를 놓고 경쟁했습니다. 내부에선 어떤 맛을 출시할 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소비자의 입맛'을 확인하기로 했죠.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서울 남영동의 롯데리아 본사로 직원들이 시제품을 들고 찾아가 '품평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절반 이상의 소비자들이 바닐라를 선택하면서 바닐라 맛 출시가 결정됐습니다. 월드콘이 팥 맛으로 출시됐었다면 지금의 월드콘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다…땅콩의 비밀
월드콘이 다른 콘 아이스크림과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땅콩'입니다. 땅콩이 맛의 비밀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콘 아이스크림의 포장을 뜯자마자 보이는 초콜릿 시럽과 땅콩은 너무나 일반적인 조합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월드콘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땅콩의 고소함과 초콜릿의 달콤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맛과 조화를 이루는 첫 맛에 비해 중간 부분에서는 약화돼 다소 '밋밋하다'고 느낀 겁니다. 어떻게 해야 처음의 맛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아이스크림 전체에 땅콩을 섞기로 합니다.
여러분들이 월드콘을 드실 때 발견하셨던 중간중간에 박힌 까만 초코칩이 바로 '땅콩'입니다. 땅콩에 초콜릿 코팅을 입혀 달콤함을 더하는 동시에 땅콩이 눅눅해지는 것도 방지했죠. 윗부분에 다양한 토핑을 올린 아이스크림은 있었지만 중간 부분의 맛까지 신경쓴 콘 아이스크림은 월드콘이 유일했습니다.
'꼬다리 플라스틱' 사라진 이유
출시 당시 월드콘이 앞세운 차별화 포인트는 '크기'였습니다. 국내 콘 아이스크림 시장을 연 해태제과의 부라보콘은 140㎖였습니다. 월드콘은 여기에 20㎖ 많은 160㎖로 출시됐습니다. 경쟁 제품보다 '한 입 더'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었죠.
단순히 용량을 늘리는 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부라보콘과 같은 모양의 콘을 써 보니 20㎖가 더 들어 있다곤 해도 시각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죠. 이 때문에 더 뾰족하고 긴 콘을 만들었습니다. 소비자들이 보는 순간 '크다'고 느낄 수 있게 한 겁니다. 지금도 월드콘은 부라보콘보다 10㎖가 많습니다. '크기 우위'는 여전한 셈입니다.
다만 이 때문에 생긴 문제도 있었습니다. 길고 뾰족한 콘을 사용하다보니 운송 중에 콘 아랫부분이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콘을 길게 만들면서 제품이 가늘어지다보니 충격에도 더 약해진 거였죠. 80년대의 열악한 도로 교통 사정과 배송 시스템이 낳은 문제였습니다. 부러진 콘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불만도 상당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던 게 플라스틱 깍지. 일명 '꼬다리 플라스틱'입니다. 콘이 충격을 받아 깨지는 것을 방지하고, 설령 깨지더라도 플라스틱 깍지가 몸체를 잡아줘 먹을 때 불편함이 없도록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먹는 사람들의 경우, 초콜릿 부분이 녹아내리며 손에 묻는 것도 방지할 수 있었죠. 플라스틱 깍지는 곧 월드콘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유통·배송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이상 배송 중에 제품이 부러지는 일이 없게 됐습니다. 아랫부분에 채우던 초콜릿도 점점 줄어들었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이제는 월드콘에서 플라스틱 깍지를 찾아볼 수 없게 된 이유입니다.
식음료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30년 전의 완벽한 조합이 지금은 시장에 통하지 않는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일도 태반입니다. 이미 정상을 차지한 장수 제품들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30년 전 맛 그대로인 것 같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스스로를 바꿔 나갑니다. 정원석 롯데제과 아이스팀장과 함께 35년을 걸어 온 월드콘의 변화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 봤습니다.
꼬다리 초콜릿 부활 가능성 "소비자 마음에 달렸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롯데중앙연구소의 아이스연구 연구팀장 정원석입니다. 저희 팀은 합병 전부터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아이스 신제품 개발·공정 개선·원가 개선 등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엔제리너스커피나 나뚜르 등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도 저희가 만들고 있습니다.
-월드콘은 출시되자마자 콘 아이스크림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인기 요인이 뭐였을까요.
△당시 롯데에는 내로라할 만한 콘 아이스크림 제품이 없었습니다. 이에 '1등을 할 수 있는 콘을 만들자'는 목표를 잡고 기존 인기 콘보다 크고 고급 재료도 많이 넣은 제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게 풍미라고 판단해 마다가스카르산 최고급 바닐라빈을 공수해 사용했죠. 저가 바닐라향을 사용할 경우 우유와 풍미가 겉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스크림에도 위에는 커피 코팅을 입힌 땅콩과 초콜릿 시럽을 뿌렸고 중가 부분에서 맛이 밋밋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초코 코팅을 입힌 땅콩을 넣었습니다. 맨 아래쪽 꼭지 3.5㎝에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콘을 코팅하고 남은 초콜릿을 채워넣었죠.
크기 역시 양만 늘린 게 아니라 잡는 모양과 시각적 효과까지 고려했습니다. 몸통을 가늘고 길게 만들어 시각적으로 더 양이 많아 보이는 길쭉한 바디를 선택했죠. 콘 아이스크림은 손으로 들고 먹는 제품이니만큼 그립감도 더 좋아졌습니다.
바삭한 콘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안쪽에 스프레이로 초콜릿을 입히는 공정을 거칩니다. 콘의 바삭함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콜릿의 맛이 바닐라와 어우러지며 더 진한 달콤한 맛을 내죠.
-월드콘은 35년간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최근에도 바닐라와 우유 함량을 높이는 리뉴얼을 진행했죠
△연구소에서 늘 들었던 말이 "1등은 항상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장수 제품에 완벽한 맛을 기대하는 동시에 예전에 먹었던 추억의 맛도 함께 기대하죠. 맛이 아예 바뀌지 않으면 올드해졌다며 외면하고 맛이 너무 많이 바뀌면 '내가 알던 맛이 아니'라며 외면합니다.
이 때문에 월드콘은 트렌드에 맞춰 맛을 개선하면서도 월드콘의 정체성·지속성도 함께 가져가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계속 추적하며 세부적인 맛을 개선하는 거죠.
월드콘의 가장 큰 장점도 수십 년의 개선 작업에서 오는 '밸런스'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스크림의 조직감과 유지방, 유단백질 비율, 바닐라의 밸런스, 오버런(공기 함량) 등을 수없이 고쳐가며 만들어 낸 조합입니다. 이 비율은 끊임없이 개발하며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바닐라향과 우유 함량을 2배로 늘린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입니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깔끔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유 함량을 늘려 신선한 우유의 맛을 강조하고 바닐라향을 더 넣어 풍부한 향을 함께 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플라스틱 깍지가 사라지고 월드콘의 상징과도 같은 '꼬다리 초콜릿'이 작아졌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플라스틱 깍지의 경우 80년대 유통 환경이 열악해 제품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월드콘은 타 제품들보다 끝부분이 뾰족하고 가늘어 그런 경우가 더 많았죠. 그래서 플라스틱 깍지를 씌워 파손을 방지한 겁니다. 최근에는 유통·운송 기술이 발전하면서 파손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인다는 의도까지 더해지면서 깍지를 빼게 됐죠.
콘 끝부분의 '꼬다리 초콜릿'은 저희도 늘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최근 커뮤니티 등에서도 '월드콘 꼬다리'를 돌려달라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 먹던 월드콘의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이 특히 좋아하시죠.
그런데 내부적으로 조사를 해 보면 초콜릿보다 아이스크림을 늘려 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초콜릿을 줄이고 끝까지 아이스크림을 채우는 걸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았던 거죠. 그래서 아이스크림 믹스를 늘리는 방향으로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초콜릿 양을 늘리는 것을 소비자들이 더 선호한다고 판단되면 다시 초콜릿 양을 늘려야겠죠. 더 많은 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니까요.
-월드콘 하면 바닐라맛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요. 그럼에도 꾸준히 새로운 맛이 나오고 있습니다. 월드콘의 변화와 미래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출시 전 밤 맛과 팥 맛 등이 후보로 올랐었지만 고객 테스트 결과 가장 평가가 좋았던 바닐라 맛이 출시됐고 지금도 전체 월드콘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번째로 많이 나가는 건 커피 계열의 맛입니다. 월드콘의 매출이 최정점이었을 때는 바닐라와 커피의 매출 비중이 7대 3까지 갔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확장 제품은 모두 20여종에 가까운데요. 정기 제품으로 운영하는 건 6~7개 정도입니다. 매출 비중이 높지 않은 확장 제품을 꾸준히 내놓는 것은 월드콘이 제자리에 정체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출시한 애플 크럼블의 경우 코로나19와 함께 SNS에 베이커리 언급량이 크게 늘어난 시기였습니다. 특히 애플파이의 인기가 높았죠. 이에 아이스크림과 애플파이를 접목해 보자는 의견이 나와 제품을 내놓게 됐죠. 지난해엔 딸기 신제품을 내놨는데, 최근에는 과육이 단단해 씹히는 맛이 좋고 상큼한 향을 강조한 딸기가 인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바닐라와 커피를 이을 3번째 주력 '플레이버(flavour)'를 개발하는 게 목표입니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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