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예전에는 계절마다 먹는 음식이 눈에 띄게 달랐었죠. 여름에는 수박과 삼계탕, 팥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이겨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추위에 닭살이 돋으면서도 귤과 고구마, 호빵을 먹을 생각에 설레기도 했죠.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의 최대 장점이 각 계절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달라서라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음식에서 계절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여름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겨울에는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앉아 빙수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거죠. 따뜻한 매장에서 시원한 빙수를 먹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구요.
아이스크림 역시 그렇습니다. 30도가 넘는 한여름 햇빛 아래만은 못하겠지만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찾는 소비자는 제법 많습니다.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여름보다 한겨울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더 많이 팔립니다. 이쯤되면 아이스크림을 대표적인 '겨울 파괴' 음식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런데 제가 '아이스크림'이라고 대충 말했지만, 사실 아무거나 얼어 있으면 다 아이스크림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고유명사처럼 돼 버린 '아이스크림 케이크'에도 아이스크림이 아닌 게 숨어 있기도 합니다. 아이스크림이면 다 아이스크림이지 다른 건 또 뭐냐구요. 다르다면, 왜 또 다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냐구요. 지금부터 한 번 알아봅니다.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려면 역시 '최초의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야겠죠. 그런데 이걸 어쩌죠.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과일즙을 뿌려 먹는 일종의 빙수에 가까웠습니다. 바로 인류 최초의 빙과류 '셔벗(sherbet)'이었죠. 우리에겐 '샤베트'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그 빙과류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소르베(sorbe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 빙과류는 원래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는 겁니다.
현재 셔벗은 일반적으로 얼음에 과일즙을 넣어 얼린 것을 일컫습니다. 우유나 크림 등 유지방이 들어 있지 않은 게 포인트죠. 단, 이것도 나라별로 달라서 프랑스에서는 엄격하게 우유 성분이 들어있지 않아야 소르베지만 미국에 가면 2% 미만이라면 우유성분이 들어가더라도 셔벗으로 인정해 주기도 합니다. 아예 셔벗과 소르베를 나눠서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과일맛인데 우유 맛이 나지 않는다', '식감이 부드럽지 않고 사각사각하다'면 셔벗이구나 생각하면 대체로 맞습니다. 배스킨라빈스의 호불호 메뉴 중 하나인 '레인보우샤베트'가 셔벗에 속합니다. 아이스크림 케익에 레인보우샤베트가 들어 있다면 '아이스크림&셔벗 케익'이라고 불러야 정확하겠죠?
그럼 대체 '아이스크림'은 뭘까요. 이름부터 'ice(얼음)+cream(유지방)'인 만큼, 우유나 그 비슷한 유제품이 들어가야 비로소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유지방이 들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하고 진한 맛이 특징입니다. 길거리에서 흔히 파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월드콘, 부라보콘 같은 콘 아이스크림이 대표적이죠. 유지방이 들어있기는 한데 비율이 낮은 제품은 '아이스밀크'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우유가 들어간 빙과류는 일단 다 '아이스크림'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우유가 들어 있더라도 만드는 방식이나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은 일반적인 아이스크림보다 공기 함량이 낮습니다. 전문용어로 '오버런(overrun)' 비율이 낮다고 말합니다. 공기가 덜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사르르 녹는 촉감이 사라지는 대신 쫀쫀하고 꾸덕한 질감이 생깁니다. 바로 '젤라또'입니다.
젤라또를 먹어 보면 비슷하게 생긴 소프트 아이스크림과는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라는 걸 알 수 있죠. 젤라또는 견과류나 과일, 커피 등 다양한 부재료가 듬뿍 들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게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으로 불리는 '돈두르마'입니다. 돈두르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살렙(sahlep)'이라는 식물의 뿌리를 넣습니다. 이 식물 뿌리에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어 쫀득한 식감을 내는 것을 돕습니다. 튀르키예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매일 뺏고 뺏기는 혈투가 벌어지는 것도 이 '쫀득함' 덕분입니다.
우유가 들어있지 않으니 셔벗 같으면서도, 또 셔벗 같지는 않은 빙과류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드'라고 부르는 단단한 빙과류입니다. 단단한 질감에 나무 막대기 손잡이가 있는 바 타입의 빙과류를 국내에서는 '하드'라고 통칭하는데요. 외국에서는 '아이스팝(iceopop)', 혹은 '아이스캔디(icecandy)'나 '아이스드롭(icedrop)'이라고 부르는 종류입니다.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팝시클(popsicle)'의 영향으로 그냥 팝시클이라고도 하죠.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얼음 사탕이라는 의미죠. 그만큼 단단한 질감이 '하드'의 특징입니다. 하드는 국내에서만 쓰이는 용어인데, 업계에서는 국내 최초의 하드인 '삼강하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하드라는 명칭이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에서 온 '아이스께끼'라는 용어를 더 많이 썼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빙과류의 종류가 이렇게 많는데 왜 우리는 이 다양한 빙과류를 다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를까요. 그만큼 다른 빙과류보다 아이스크림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국내 주요 빙과 브랜드 매출 순위를 한 번 볼까요.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10개 브랜드 중 '아이스크림'이 아닌 제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1위인 빙그레의 투게더는 패키지만 봐도 진한 우유맛이 떠오를 정도로 '아이스크림'의 대표 브랜드죠.
하드는 너무 딱딱해 먹기가 불편하고 젤라또나 돈두르마는 제조법이 까다로워 접근성이 낮은 편입니다. 셔벗의 날카로운 식감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는 식감, 풍부하고 진한 유지방 맛의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아이스크림이 모든 빙과류를 대표하는 이름이 된 이유입니다.
갑자기 가을로 접어든 듯 쌀쌀한 날씨지만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이스크림이 땡기네요. 오늘 저녁엔 일찌감치 따뜻한 전기장판을 켜고 앉아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 하나로 하루를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