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뻬네라 아이스크림'
기나긴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알아봤으니 이제는 우리나라의 아이스크림 역사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정확하게 아이스크림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각종 문헌 등을 통해 살펴보면 아이스크림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 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의 신문 기사나 요리책 등에 아이스크림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당시의 신문 기사들을 찾아보면 심심찮게 '아이스크림'이 등장합니다. 탑골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행상 앞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몰려있습니다. 또 행사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는 기사도 있는 것을 보면 아이스크림은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식품이었던 듯합니다.
아이스크림 제조법이 실린 우리나라 요리책은 위관(韋觀) 이용기(李用基) 선생이 1924년에 발간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입니다. '조선에 둘도 없는 최신 요리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식은 물론 양식에 이르기까지 총 790가지 레시피가 담겨있습니다. 1924년 초판이 발간된 이후 1942년까지 꾸준히 판매된 베스트셀러입니다. 여기에 '뻬네라 아이스크림(바닐라 아이스크림) 제조법'이 쓰여있습니다.
당시의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현재의 '바(bar)'형태였습니다. 설탕물을 얼린 것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물뼉다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냉동기술은 초창기였습니다. 대량 생산 시설이 없었죠. 그 탓에 우리의 아이스크림 사업은 영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위생이 좋았을 리 만무합니다.
'대량 생산' 아이스크림의 탄생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기업형 대량 생산 아이스크림이 나온 것은 1962년입니다. 삼강유지화학(훗날 롯데에 인수돼 롯데삼강으로 사명을 변경했다가 롯데푸드를 거쳐 현재는 롯데제과로 합병)이 선보인 '삼강하드아이스크림'이 국내 첫 대량 생산 빙과입니다. 삼강은 일본 유키지루시(雪印) 유업에서 중고 기계를 들여와 하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아이스크림은 해태제과가 처음 선보였습니다. 해태제과는 1969년 말 덴마크 호이어(Hoyer)사(社)에서 아이스크림 시설을 도입, 1970년 '부라보콘'을 내놓습니다. 그때까지 하드류에만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우유가 들어간 새로운 형태의 아이스크림에 열광합니다. 그 덕에 해태제과는 해마다 생산시설을 증설하면서 국내 아이스크림 업계를 선도하게 됩니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시장을 휩쓸었던 부라보콘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월드콘'입니다. 롯데제과는 1986년 월드콘을 내놓습니다. 마침 멕시코 월드컵이 열리던 해라 롯데제과는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아이스크림을 내놓겠다는 포부였죠. 그런 만큼 상품성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일단 월드콘은 한눈에 보기에도 경쟁 제품인 부라보콘에 비해 컸습니다. 부라보콘 보다 한 입 정도 더 큰 크기로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초콜릿과 땅콩 토핑을 더해 차별화를 꾀했죠. 롯데제과의 이런 시도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출시 2년 만에 부라보콘을 제치고 국내 콘 아이스크림 판매 1위를 차지합니다. 이어 1996년부터는 전체 아이스크림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차별화'에 목숨을 걸다
요즘은 아이스크림콘 끝에 있는 초콜릿이 보편화됐지만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콘 끝에 초콜릿이 고여있었던 것은 부라보콘이 시작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해태제과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시 해태제과는 부라보콘 제조 시 콘 안쪽 아이스크림이 닿는 곳이 아이스크림에 의해 눅눅해지지 않도록 초콜릿 코팅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술 부족으로 이 초콜릿이 녹아내려 콘 끝에 고였던 겁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속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콘 끝에 고여있는 초콜릿에 열광합니다. 이를 눈여겨 본 롯데제과는 월드콘 출시 당시 아예 콘 끝에 초콜릿을 넣어 출시합니다. 소비자들의 니즈와 트렌드를 유심히 읽은 결과물인 셈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월드콘은 출시 전부터 철저히 부라보콘을 타깃으로 삼고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크기는 물론 맛, 토핑 모양까지 세심히 신경을 썼습니다.
대대적인 마케팅도 한몫을 합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으로 시작하는 부라보콘의 CM송을 이기기 위해 월드콘은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콘, 롯데 월드콘~'이라는 CM송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출시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 CM송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다는 방증입니다.
당시 월드콘 CF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 가수 전영록 씨와 채시라, 이상아 씨가 등장하는 TV CF는 공전의 히트를 칩니다. 그 덕에 월드콘은 단기간 내에 부라보콘을 따라잡고 아이스크림 업계의 왕좌에 오릅니다. 월드콘은 작년 65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여전히 국내 아이스크림콘 시장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어질 [결정적 한끗]3편에서는 월드콘에 좀 더 집중해서 들어갑니다. 36살 월드콘이 지금껏 아이스크림콘 시장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었던 비결들을 하나씩 뜯어볼 예정입니다. 제조 과정에 담긴 비법부터 마케팅 기법까지 깨알같이 모아봤습니다. 곳곳에 숨겨둔 월드콘의 비밀들을 함께 찾아 보실까요?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