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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라면업계가 '프리미엄'에 집착하는 이유

  • 2023.02.14(화) 06:50

'서민음식 대표' 라면…프리미엄화도 꾸준히 시도
신라면 블랙은 고가 정책 반발에 단종되기도
기존 라면 인상 어려워 프리미엄 신제품에 집중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구매하는 소비자/사진제공=BGF리테일

약 12년 전인 2011년 4월의 일입니다. 농심이 '우골보양식'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신제품 '신라면 블랙'을 선보였습니다. 기존 신라면보다 건더기도 풍성하고 '우골분말스프'를 추가로 넣은 프리미엄 라면이었죠. 라면업계의 신세계를 열겠다는 농심의 의지가 보인 제품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땠냐구요. 반 년도 버티지 못하고 단종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라는 광고 문구가 허위과장광고라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으며 매출이 급감해서였지만 실제로는 '가격'이 문제였죠. 개당 1600원이라는 가격을 소비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흠집 잡기에 나섰던 겁니다. 프리미엄 라면은 아직 시기상조였던 셈입니다.

농심은 신라면 블랙을 출시하며 '우골보양식사'를 콘셉트로 내세웠다/사진제공=농심

'프리미엄 라면'을 향한 도전의 역사는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6년 삼양식품은 신제품 라면 '수라'를 선보입니다. 쇠고기 편육을 넣은 프리미엄 라면인데요. 가격은 무려 1000원.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평균 600원 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라면 시장의 주류 제품들은 100원이었습니다. 전체 판매량의 60%가 100원짜리 라면이었죠. 이 해 출시된 농심 신라면도 200원이었고요. 이럴 때 1000원짜리 라면이라니, 그야말로 '프리미엄'이죠.

사실 수라는 라면이라기보단 레토르트에 가까운 제품이었습니다. 라면 면발에 레토르트 소스를 얹어 먹는 제품이라 가격대가 높았죠. 현재 판매되는 제품 중에는 팔도의 '팔도 짜장면'과 GS25의 공화춘이 비슷한 느낌일 겁니다. 하지만 당시 시장은 수라를 '라면'으로 인식했고 과도한 가격이라며 지탄받았습니다. 결국 아무도 모르게 단종 수순을 밟았죠. '우골보양식'을 강조하며 기존 라면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던 신라면 블랙과 비슷한 행보였습니다. 

1986년 1000원에 출시됐던 '쇠고기면 수라'/사진=삼양식품 유튜브

프리미엄 라면을 향한 제조사들의 도전과 이를 막으려는 소비자들의 저항은 이후로도 계속됐습니다. 수라와 신라면 블랙의 사례는 '소비자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겠죠. 제조사가 승리할 때도 있었습니다. 2015년 농심 짜왕으로 시작된 '프리미엄 라면' 트렌드입니다. 

농심이 신제품 짜장라면 짜왕을 1500원이라는 고가에 내놨고 오뚜기가 진짬뽕으로 카테고리를 넓힙니다. 기존 짜장·짬뽕라면과 확연히 다른 품질에 소비자들도 두 손 다 들고 말았죠. 지금은 다시 '소수파'가 됐지만 당시엔 신라면에 버금가는 매출을 올리며 '1500원 라면'을 정착시킵니다.

이 때부터 라면업계는 기존 라면 가격은 최대한 낮게 유지하되 신제품 가격을 크게 올리는 전략을 정착시킵니다. 출시 초엔 1+1, 2+1 등 행사를 폭넓게 가져가 가격 저항을 줄이기도 합니다. 

실제 최근 출시되는 신제품 라면들의 가격은 기존 인기 라면들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2021년 출시된 하림의 '더미식라면'은 봉지면 2200원, 컵라면 2800원이라는 고가로 출시됐고 지난해 삼양식품이 내놓은 컵라면 '쿠티크 에센셜짜장'도 280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기존 인기 컵라면들의 2배에 달합니다. CU가 지난달 선보인 '백종원 고기짬뽕'은 PB상품임에도 1900원 가격표를 달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한 하림의 더미식라면/사진제공=하림

라면업계 역시 고민이 많습니다. 사실 신제품 라면은 판매량이 기존 인기 라면들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라면만큼 '먹던 것만 먹는' 제품군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진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신라면, 안성탕면, 진라면, 삼양라면 등 매출 톱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게 낫죠. 

하지만 기존 제품의 가격을 올릴 때 소비자들의 저항은 상상 이상입니다. 오뚜기는 지난 2021년 2월 라면 가격을 평균 9.5% 올리겠다고 공지했다가 철회했습니다. 무려 13년 만의 가격 인상이었음에도 저항이 거셌기 때문입니다. 

최근 밀가루·팜유 가격 폭등으로 잇따라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빛이 바래긴 했지만 라면은 원래 가격 인상이 드문 제품군이었습니다. 원가는 꾸준히 오르는데 기존 제품 가격을 올리기는 어려우니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신제품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던 거죠. 라면 기업들이 '프리미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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