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유통·식품업계 주주총회도 행동주의펀드와 회사 간 표대결이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캐스팅 보트를 쥔 '개미'나 기관투자자가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회사 경영을 감시하는 감사위원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달 열린 현대백화점 임시 주총에서 인적분할 안건이 기관과 소액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예상밖에 부결된 전례가 있는 만큼 주총 시즌을 앞두고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감사위원, 개미가 뽑는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KT&G는 오는 28일 주총을 앞두고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펀드가 제안한 안건을 다룬다. 두 자산 운용사가 가진 KT&G 지분은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의결권 3% 이상을 확보하거나 지분 1% 이상을 6개월 보유하면 '주주제안'이 가능하다. 자본금 1000억원 이상 대기업은 6개월 이상 지분 0.5%만 보유해도 된다.
FCP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 후보 추천 △자기주식 15% 소각 △현금배당 주당 1만원 △1조2000억원 규모 자기주식 취득 △분기배당 정관 추가 등을 제안했다. 안다자산운용도 △이수형 법무법인 메리트 변호사 등 3명 사외이사 선임 △배당금 증액 등을 제안했다.
이목이 집중되는 안건은 감사위원이다. 감사위원 선임의 경우, 대주주 의결권을 보유주식의 최대 3%만 제한하는 일명 '3%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기준 KT&G 지분 구조를 보면 △국민연금공단 7.5% △퍼스트 이글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7.12% △중소기업은행 6.93% 등이다.
3%룰을 적용해 유효의결권을 계산하면 △국민연금 △퍼스트 이글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기업은행은 각각 3.9%에 머물게 된다. 작년 말 주주명부 폐쇄일을 고려하면 의결권 비중은 바뀔 수 있지만, 사실상 감사위원의 선임권을 기관과 소액주주들이 쥐고 있는 것이다.
FCP는 지난 13일 의결권대리행사권유참고서류를 통해 "회사 주가가 15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부실한 거버넌스로 인해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KT&G는 "이사회는 사외이사 비율 75%로 매우 독립적이며 모범적인 이사회"라고 맞받아쳤다.
남양유업은 오는 31일 열릴 주총에서 차파트너스운용이 제안한 △1916억원 규모 자기 주식 취득 △주당 2만원 이익배당 △발행주식 액면분할 △심혜섭 심혜섭법률사무소 대표의 감사 선임 등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차파트너스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한앤컴퍼니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반 주주 권익을 높이기 위해 주주제안을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홍 회장 일가의 남양유업 지분이 53.08%인 만큼 차파트너스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은 열려있다. 남양유업 감사위원 선임 역시 3%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지분은 △홍 회장 일가 53.08% △차파트너스가 3.07%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3%룰을 적용해 유효의결권을 계산해보면 홍 회장 일가와 차파트너스가 각각 6.4%에 머문다. 일반 소액주주들이 감사위원 선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오는 23일 주총이 열리는 광주신세계도 소액주주들과 표대결이 예상된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건을 두고, 일부 소액주주가 배일성 회계법인 이사를 추천하면서다. 반면 광주신세계는 한동연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내세웠다. 이밖에 소액주주들은 작년 책정된 주당 2200원 현금배당을 3750원으로 상향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에도 '3%룰'이 적용될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말 기준 광주신세계의 지분 구조가 △신세계 62.5% △피델리티 9.99% 등인 점을 감안하면 감사위원인 사외이사는 기관과 소액주주의 표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사진 정비하고 사명 바꾼다
식품업계 주총에선 오너의 이사진 복귀 등이 눈에 띈다. 오는 22일 롯데칠성음료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올린다. 안건이 통과되면 신 회장은 3년 만에 롯데칠성음료 등기이사로 복귀하게 된다. 앞서 신회장은 2017년 롯데칠성음료 사내이사로 선임된 후 2019년 재선임됐으나 계열사 임원 겸직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자진 사임했다.
롯데칠성음료 측은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글로벌 투자와 인수합병, 사업 확장 등에 관한 의사 결정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는 롯데지주·롯데알미늄·롯데장학재단 등이 지분 62.4%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오는 23일 주총에서 '롯데제과' 사명을 '롯데웰푸드(LOTTE WELLFOOD)'로 바꾸는 정관 변경 안건도 논의한다. 회사 측은 "통합법인 출범에 따른 신시장 대응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가 목적"이라 전했다.
롯데제과는 사업다각화를 위한 발판으로 사명변경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사명변경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작년 7월 롯데푸드와 합병 후 '제과'란 이름이 기업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안건이 통과되면 다음달 1일부터 롯데웰푸드 사명이 적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