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계가 식품업계의 제로 슈거 트렌드를 이용해 과도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원래 당이나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는 맥주 제품에 '제로 슈거'라는 이름을 붙이며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실제로 성분 중 당이 없기 떄문에 허위광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들에게 기존 맥주보다 건강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마케팅이라는 지적이다.
'리얼 제로 슈거 공법'이 뭔데?
하이트진로는 지난 18일 테라 라이트 제로슈거를 출시했다. 355㎖ 캔 기준 88.8㎉, 알코올 도수 4도의 라이트 라거다. 칼로리를 기본 맥주의 3분의 1가량 줄이고 당류가 들어있지 않은 게 특징이다. 하이트진로는 해당 제품을 출시하면서 "원료부터 첨가물까지 당류나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며 이를 '리얼 제로슈거 공법'이라고 설명했다.
설명만 들으면 최근 탄산음료 업계의 주류 트렌드인 제로 슈거 음료처럼 설탕이나 과당을 넣지 않고 만든 맥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오비맥주의 카스나 하이트진로의 테라·켈리, 롯데칠성의 클라우드·크러시 등 일반적인 라거 맥주에는 원래 당류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테라도 원재료가 정제수와 맥아·호프·산도조절제·효소제·영양강화제가 전부다. 테라 라이트와 기본 레시피를 공유하는 테라에 당류가 들어가지 않으니 테라 라이트 역시 굳이 당류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하이트진로가 말하는 '리얼 제로슈거 공법'이 무의미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한 이유다.
소주업계도 앞서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신제품 소주가 '제로 슈거' 제품이라며 마케팅을 펼쳤는데 기존 소주 역시 당류 함량이 많지 않아 제로 슈거의 기준에 부합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하지만 오리지널 소주에는 미량이나마 과당 등을 넣었고 감미료도 사용했다. 당류와 대체 감미료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던 맥주와 상황이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추구하는 맛을 내기 위해 레시피에 따라 당류를 첨가하는 맥주도 있지만 카스나 테라 등 일반적인 라거 맥주에는 당류를 넣지 않는다"며 "리얼 제로슈거 공법이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당 들어 있어도 '제로 슈거'
일부 제품은 당류가 포함돼 있음에도 '제로 슈거'라고 광고하기도 한다. 오비맥주의 경우 카스 라이트의 원재료에 당류가 들어 있음에도 'ZERO SUGAR'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올해 초 카스 라이트의 패키지를 리뉴얼하면서 겉면에 'ZERO SUGAR' 문구를 추가했다.
기존에는 칼로리를 줄인 것을 강조하는 '33% 칼로리 DOWN' 뿐이었다. 이번 리뉴얼에서 바뀐 것은 패키지 뿐이다. 제품은 동일한데 '제로 슈거' 속성이 생긴 셈이다.
오비맥주는 리뉴얼 당시 "저칼로리·제로 슈거 등 니즈가 점차 세분화하며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의 패키지를 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제품 자체는 같지만 제로 슈거가 소비자들의 선택 포인트로 자리매김하면서 제로 슈거 문구를 추가했다는 설명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발효 전 단계에서 당류를 투입한다"며 "완제품에는 당류 성분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제로 슈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오비맥주 카스 라이트의 경우 QR표시 시범사업 제품으로 선정되면서 패키지의 성분 표시에서 당류를 제외하기도 했다. 리뉴얼한 카스 라이트의 패키지 성분표에는 제2주성분인 맥아와 제5주성분인 호프추출물만 기재돼 있다. QR코드로 확인할 경우 당류가 정제수와 맥아에 이어 제3주성분으로 표기돼 있다. QR코드를 확인하지 않고 제품 라벨만 살피는 소비자라면 해당 제품에 당류가 전혀 없다고 오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수입산인 맥아와 호프추출물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관할하는 원재료"라면서 "QR표시 시범사업을 운영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할이 달라 해당 원재료의 경우 QR코드 외 제품에도 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칼로리 줄였다더니…"알코올 줄어서"
라이트 맥주를 내놓는 주류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자랑하는 '칼로리를 줄였다'는 문구 역시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과도 거리가 있다. 설명만 들으면 똑같은 맥주의 칼로리를 대폭 줄인 것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서 자연 감소한 칼로리가 절반 가까이 된다.
롯데칠성 클라우드의 경우 일반 클라우드 500㎖의 칼로리가 210㎉인데 비해 클라우드 라이트 500㎖는 99㎉다. 52.9%를 줄였다. 알코올 도수는 클라우드가 5도, 클라우드 라이트는 3도다. 알코올 도수를 2도 줄이는 것으로 이미 40%의 칼로리를 절감할 수 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알코올 도수 2%의 차이도 있지만 기존 맥주와 다르게 발효시 알코올로 변하지않는 잔당(비발효 잔존당)을 거의 없애면서 칼로리를 더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카스 라이트와 하이트진로 테라 라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카스 후레쉬는 알코올 도수 4.5도, 카스 라이트는 4도다. 0.5도 차이는 비율로는 11%가 넘는다. 테라 라이트도 4.6도에서 4도로 13%를 줄였다.
주류업계의 제로 슈거 마케팅이나 칼로리 다운 마케팅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실제로 당류를 넣지 않았거나, 당류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함량이 기준치보다 적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표시기준에 따르면 식품 100㎖당 당류가 0.5g 미만이면 제로 슈거 표기를 할 수 있다. 355㎖ 캔맥주를 기준으로 1.775g 미만의 당류는 넣을 수 있다는 의미다.
칼로리를 33% 줄였다고 한 맥주 역시 일반 맥주보다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칼로리를 줄였다'는 마케팅 문구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기존 맥주보다 라이트 맥주가 몸에 덜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부적절한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세한 성분이나 제조법 등을 알기 어려운 소비자들이 문구만 보고 실제로 특별한 공법을 이용해 당을 제거했거나 칼로리를 줄였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식당에서 밥 양을 줄여 놓고는 '살이 덜 찌는 밥'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 업계 경쟁이 심해지면서 마케팅이 과도해지는 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자사 제품의 장점을 알리는 건 좋지만 소비자들이 오인할 수 있는 문구는 자율적으로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