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에서 또 경영 복귀를 시도합니다. 신 전 부회장은 매년 6월 롯데홀딩스 주총에 앞서 주주제안서와 질의서를 제출하고 일본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에 관련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공개했습니다. 필요한 경우 한국에도 관련 내용을 요약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늘 비슷한데요. 그는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 능력이 의심되며, 그런 신 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대신 자신을 롯데홀딩스 이사로 선임해 한국과 일본 롯데를 근본적으로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 전 부회장 벌써 10년째 경영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보니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다소 새로운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바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까지 대놓고 저격했다는 점입니다.
경영 능력 검증 안됐다?
이번 롯데홀딩스 주총에는 신유열 전무의 이사 선임안이 회사 측 제안으로 상정됩니다. 이 사실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습니다.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를 통해 한국 롯데그룹과 연결된 일본 회사입니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의 지분 11.06%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호텔롯데의 최대주주가 바로 롯데홀딩스입니다.
롯데홀딩스가 한·일 롯데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현재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도 신동빈 회장과 타마츠카 겐이치(玉塚元一) 사장이 맡고 있습니다. 신 전무가 롯데홀딩스 이사로 선임되면 한·일 롯데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자신의 조카가 이사로 선임되는 것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국내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 방향성이 중요한 현 시점에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합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습니다.
신 전 부회장 측이 롯데홀딩스에 제출한 '회사 제안에 관한 이사 선임 의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관한 공지'에는 보다 적나라한 말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 신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은 컴플라이언스 및 기업 지배구조의 관점뿐만 아니라 경영 능력의 관점에서도 롯데홀딩스의 경영자로서 확실히 부적격하다"면서 "신유열 전무 또한 신 회장의 아들이라는 점 외에 경영자로서의 실적이나 공헌 등 롯데홀딩스 이사 후보자로 꼽힌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또 "롯데홀딩스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신동빈 부자의 롯데그룹 사유화가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도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롯데그룹 경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모순적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홀딩스 최대주주인 광윤사의 지분 절반 이상을 들고있습니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주총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광윤사는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요. 신 전 부회장이 이 광윤사의 지분 50.3%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 전 부회장은 10년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이긴 적이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주주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올해 주총에서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매년 비슷한 논지의 입장문을 내놓는 건 경영 복귀 가능성보다는 동생 신동빈 회장에게 딴지를 걸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는 신 회장뿐만 아니라 조카인 신유열 전무까지 신 전 부회장의 레이더망 안에 들어왔죠.
롯데 위기의 시발점
문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 중 한명이라는 점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2014년 일본 롯데그룹 주요 임원직에서 잇따라 해임되자 이듬해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을 내세워 경영권 찬탈을 노렸는데요. 이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은 △호텔롯데 상장 무산 △일본 국적 프레임 구축 △신동빈 회장 구속 수사 등이 포함된 '프로젝트 L'을 주도하며 롯데그룹을 흔들었습니다.
롯데그룹은 한동안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동빈 회장은 수년간 롯데그룹의 수습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코로나19 등 대외 변수 탓에 여전히 힘겨운 상황이 이어지는 중이죠. 신 회장이 사업이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경영인은 아닐지 모르지만, 최소한 수년째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 보내는 질의서를 살펴보면 비전, 전략은 실종돼 있습니다. 그저 동생의 무능력에 대해서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딴지를 걸고 있을 뿐입니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를 경영하던 시절을 봐도 그 역시 그리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경영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원래 롯데그룹은 일본을 기반으로 성장해왔지만 현재는 일본 매출은 한국 롯데와 견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을, 신동빈 회장이 한국을 맡아 경영한 이래 한·일 롯데의 격차가 계속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신 전 부회장이 위법 소지가 있는 신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아버지에게 허위 보고까지 했던 일 역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20년 공개된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에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닌 신동빈 회장을 자신의 후계자로 명시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이 유언장에는 "그룹 발전을 위해 협력해 달라"는 신 명예회장의 유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동주 전 부회장의 동생 때리기는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이번엔 조카까지 저격했습니다.
업계에선 신 전 부회장의 행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수 년째 반복되는 주장과 판을 뒤집을 만한 카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늘 롯데그룹의 미래를 걱정해왔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정말로 롯데그룹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지금과 같은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몽니를 부리기보다는 스스로 롯데그룹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