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은 대출금리 산정과정에서 연소득이 있는 고객을 '소득이 없다'고 분류해 높은 이자를 받았다. 담보를 제공한 고객에 대해 '담보가 없다'고 가산금리를 높게 적용한 은행도 있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은 금리산정 전산시스템을 적용하지 않고 기업고객에게 적용 가능한 최고금리 13%를 적용했다.
21일 금융감독원은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결과, 상당수 은행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출금리를 산정해 금융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부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점검 대상 은행은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SC제일·시티·부산은행 등 9곳이다. 이날 점검 결과를 발표한 오승원 금감원 부원장보는 "깜짝 놀랐다"고 표현했다.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 은행연합회 등은 2011년 합리적인 대출금리 산정을 위해 모범규준을 만들었지만 은행들이 이 규준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모범규준 자체도 허술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부당한 금리를 산정한 은행에 대해 제재할 근거가 없어 제도적 보완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은행의 리스크관리비용 등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적용해 산정한다. 금융소비자들이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계좌를 개설하고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것도 금리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점검 결과 상다수 은행 대출금리 산정과정에서 원칙은 없었다.
은행은 연초에 가산금리를 산정해야지만 이번 점검 결과 일부 은행은 수년간 가산금리를 재산정하지 않고 고정된 가산금리를 적용했다. 또 가산금리에 반영되는 은행의 목표이익률은 매년 1회 내부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정해야 하지만 내부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목표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차주가 연봉 인상, 승진 등으로 신용도가 오르면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오승원 부원장보는 "은행들이 큰틀에선 대체적으로 모범규준에 따라 금리를 산정하고 있다"면서도 "이번 점검 결과 불합리하게 대출금리를 산정하는 은행이 상당수 적발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적발된 은행들은 자체 조사를 거친 뒤 부당하게 적용된 대출금리를 환급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대출금리 산정체제가 불합리한 은행에 대해 업무개선을 지도하고 모범규준과 공시제도도 손볼 계획이다. 현재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합계만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대출금리 산정내역서를 앞으론 부수거래 우대금리 항목도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은행의 주먹구구식 대출금리 산정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오승원 부원장보는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고 당국은 개입하지 못한다"며 "금리산정때 불공정한 영업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 등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창우 금감원 국장은 "은행이 불합리한 대출금리 산정에 대한 내규 위반을 일벌백계해야 하지만 아직 은행 내부 시스템이 미비하다"며 "감사원에선 내규를 갖고 당국이 제재를 못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모범규준이 정확히 구체화되지 않았고 은행은 모범규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며 "이번을 계기로 모범규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