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궁금한 이슈를 핀셋처럼 콕 집어 설명해드립니다. 이번 주제는 '리디노미네이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 찬반 논란이 있습니다. 그 이유와 찬(득), 반(실) 주장, 국내외 사례 등을 살펴봅니다.
"갑자기 돈이 바뀐다는 소식에 마을사람들이 하나같이 장롱, 부뚜막에 든 돈을 모두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곽봉의(92세) 씨가 회고한 1962년은 '혼돈'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사용되던 10환(圜)을 현재의 1원으로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을 기습적으로 단행했습니다. 여기에 가구당 한 사람이 교환활 수 있는 비율을 500원 한도로 제한하고 기존 예금을 동결하기도 했죠. 그는 " 옛날 돈은 이제 못쓴다며 화폐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돈을 쓸 수 도 없었다"며 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기억했습니다.
20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도, 추진하지도 않았다"며 당장의 리디노미네이션 도입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은 언젠가 이뤄져야 할 과제라는 공감대는 어느정도 형성돼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국내 화폐의 액면가치가 높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리디노미네이션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화폐의 탄생 이후 리디노미네이션은 지속해서 있었습니다. 이 사례들 중 연착륙에 성공한 리디노미네이션도 있는 반면 실패한 리디노미네이션도 있기 마련입니다.
국내외 리디노미네이션 성공과 실폐 사례를 짚어보면 우리가 리디노미네이션을 준비하는 데에 시사하는 점이 있습니다. 최소한 1962년 혼돈을 반복해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 파워인플레·국민혼란 '흑역사'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처럼 리디노미네이션은 과도한 물가상승(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후기 발행된 '당백전'입니다.
고종 3년(1866년) 11월 당백전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합니다. 재정이 악화되자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재정을 안정화 하려던 계획이었습니다.
당백전(當百錢)은 이름의 의미 처럼 사용되던 상평통보의 100배의 가치를 갖고 있는 화폐였죠.
문제는 시장에서 당백전을 그간 사용하던 상평통보의 100배의 가치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당백전의 가치를 5~6배 가량 더 높은 화폐로 취급했습니다. 화폐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죠.
더군다나 당백전을 기존 시장에 풀렸던 금액의 1.5배만큼을 발행했다고 합니다.
시장에서는 새로운 화폐를 쓰지 않는데, 더 높은 가치를 지닌 화폐가 한꺼번에 풀리다 보니 화폐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물가는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초 인플레이션입니다. 결국 당백전은 1년도 안된 1867년 4월 주조가 금지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백전의 발행은 시장의 물가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리디노미네이션은 연착륙 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 리디노미네이션, 어떻게 연착륙 했나
반대로 리디노미네이션이 연착륙 한 경우도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유로화와 터키의 신 리라화가 대표적입니다.
먼저 유로화는 지난 2002년 1월부터 발행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화폐로 유로존에 가입한 국가들의 공용 화폐입니다.
1993년 유럽공동채(EC)가 유럽연합(EU)로 출범하면서 경제공동체도 함께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공용화폐를 약 10년간 준비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유로화를 도입한 이후에도 그간 사용되던 화폐의 통용을 일정 기간 동안 인정하면서 혼란을 최소화했습니다.
이 결과 현재 유로는 유럽을 대표하는 화폐로 세계적으로 통용될 만큼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유로화 도입이 소위 '유로화 사태'로 불리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경제 문제가 야기 되기도 했지만, 리디노미네이션 자체는 연착륙 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유로화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의 화폐를 통합하는 역대급 대규모 리디노미네이션 이었다"며 "유로화는 오랜 기간의 준비와 그간 사용하던 화폐의 통용을 인정하면서 연착륙 했다. 리디노미네이션 자체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단일 국가로는 터키의 리디노미네이션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힙니다.
터키는 2000년대 초반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함께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자 2005년 종전의 리라화를 신 리라화로 대체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터키는 이러한 화폐개혁을 2015년까지 10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단행했습니다. 화폐 교환에 따른 국민혼란은 물론 새로운 화폐도입에 들어갈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함으로 풀이됩니다.
이 결과 터키의 리디노미네이션은 연착륙 했을 뿐만 아니라 터키의 물가상승률을 안정화하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기능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상황이 최대한 안정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방법과 시간 등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 특히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충분한 준비가 뒷받침 한다면 우리나라의 리디노미네이션도 성공적인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 입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