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객이 직업을 속이고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보험사가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면 보험을 해지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근로자 A씨가 작업 중에 추락해 사망했는데, 유족이 보험금을 받으려고 보니 A씨가 보험계약 당시 건설 노동자가 아닌 '사무직'으로 가입했던 것입니다.
보험사는 이를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했고, 유족들은 보험금 청구 소송을 걸었습니다. 2021년부터 이어진 공방 끝에 대법원은 보험을 해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A씨가 2009~2016년 보험 가입 당시에는 직업을 속였지만, '고지의무'에 따른 해지는 가입 후 3년간 가능한 탓에 이미 효력이 상실됐고, 이후 직업이 바뀌지 않았으니 '통지의무'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겁니다.
아마 이를 계기로 보험사들이 고지·통지의무 검증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은데요.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됐던 고지의무와 통지의무,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보험계약 전 알릴 의무
고지의무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계약자에 적용되는 의무입니다. 계약자는 보험계약 전 본인 관련 중요사항을 보험회사에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요. 이를 위반하면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 보험금 또한 못 받을 수 있습니다.
B씨는 2019년 11월 건강검진에서 유방촬영검사를 받고 '결절 의심', '초음파 검사 요망' 등의 소견을 받았는데, 보험 가입 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2023년 2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과거 의사 소견을 발견한 보험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질병 종류는 통상 5년 내, 1년 내, 3개월 내 등 발생 시점에 따라 적용되는데요. 고지 내용은 보험 상품마다 다를 수 있지만, 계약 시 안내되는 청약서(질문표)에 사실대로 작성하면 문제없습니다. 질문에 어디까지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보험사에 문의하고 확실히 하는 편이 좋습니다.
보험 가입 후 '투잡족'이 됐다면
솔직하게 알리고 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상법에 따라 가입 후에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에 보험사에 바로 알려야 하는 '통지의무'가 있습니다. 고지의무 관련 분쟁이 주로 '병력'과 관련된 것이라면 통지의무는 '직업'과 연관성이 큽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는 상해 위험 정도에 따라 직업을 1~3급으로 구분하는데요. 학생이나 사무직처럼 외부 근로가 없는 직업은 1급, 마트 계산원·정비공 등 내부 근로 비중이 큰 직업은 2급, 택시기사 등 외부 근로자는 3급으로 분류됩니다.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퇴사 후 택시기사로 전향했다면 1급에서 3급으로 바뀌니 반드시 알려야 하는 거죠.
전직이 아닌 부업의 경우에도 통지의무가 적용됩니다. 낮에는 회사원, 저녁엔 배달원으로 투잡을 뛴다면 상해 위험이 더 큰 배달원으로 보험사에 고지해야 합니다. 공장에 사무직으로 입사했지만, 회사 사정상 제조 업무 등을 도와주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설계사와 협의해도 '독박'될 수
"묻는 말에 대답만 간단히 하시고, 괜히 더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보험설계사 중에는 계약자가 너무 솔직하게 답변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본인의 상황을 자세히 알리지 말라는 '꿀팁'을 전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설계사가 부실한 고지를 권유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가입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법원은 설계사에 고지의무 수령권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고지·통지 의무 위반 대다수가 보험금 청구 때 적발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보험사는 보험금 청구서, 현장심사 등을 통해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 가입자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는지를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보험료를 성실히 내고도 이들 의무를 소홀히 해 보험금을 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보푸라기]는 알쏭달쏭 어려운 보험 용어나 보험 상품의 구조처럼 기사를 읽다가 보풀처럼 솟아오르는 궁금증 해소를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궁금했던 보험의 이모저모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