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조직개편 대상인 금융당국이 바짝 몸을 사리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선 조직개편 관련 의견을 개진하는 대신 새정부 공약 이행 방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관리 등 현안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등을 논의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 권익보호 제고 방안을 보고했는데, 금융소비자보호 평가위원회 신설 등이 눈길을 끌었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부 직원들은 거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조직 개편에 따른 이해관계도 얽혀 내부 의견도 분분한 상황이라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조직개편 빠진 업무보고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19일 국정기획위에 업무부고를 진행했다. 현안으로는 가계부채와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금융사 건전성을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세 대응방안 등을 점검했다.
특히 이 대통령 공약 이행방안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금융위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채무부담 완화를 위한 배드뱅크 설립과 새출발기금 확대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이재명식 새출발기금, 자영업자 원금 최대 90% 탕감(6월19일), 배드뱅크, '7년 이상·5천만원 이하' 개인 빚 최대 80~100% 감면(6월19일)
이와 함께 AI(인공지능) 세계 3대 강국 실현 등을 위한 100조원 이상의 첨단전략산업 지원방안, 반도체와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금융의 역할 등에 대한 내용도 업무보고에 담았다.
금감원은 자본시장 신뢰도 제고와 소비자보호에 중점을 뒀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본시장 투명화를 통한 시장 저평가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새정부 기조가 소비자보호에 힘을 싣고 있는 까닭이다.
금융권이 주목하는 부분은 소비자보호 평가위원회 신설 방안이다.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평가위원회는 그 동안 논란이었던 분쟁조정에 대한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서다.
사모펀드와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등 불완전판매로 인한 분쟁이 급증했다. 현재는 금감원이 분쟁을 조정해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여도 금융사가 수락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권리 행사를 포기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분쟁은 늘었지만 소비자보호는 미흡했다는 의미다.
편면적 구속력은 분쟁 조정안에 대해 소비자가 수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반면 상대방인 금융사는 소비자 선택을 따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소비자가 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사도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 금감원은 편면적 구속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여당)의 대선 공약집에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 검토' 방안이 포함된 만큼 업무보고에선 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몸 사리는 금융당국…내부서도 '동상이몽'
현재 거론되는 금융당국 조직개편 방안은 금융위의 정책 분야를 기획재정부로 옮기고, 금융사에 대한 감독 정책과 실무 기구를 금융감독위원회로 통합하는 내용이다.
또 금융소비자에 대한 감독을 전담하는 금융소비자보호원 신규 설립 등도 거론된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담하는 기구를 통해 관련 감독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조직이 분리될 수 있다. 금융위 내 정책 부분이 기재부로 이동하는 방안으로 내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세종청사로 근무지를 이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관련기사: [현장에서]"진짜 세종 가야 돼?"…금융위 MZ들의 고민(6월24일)
일각에선 배드뱅크 등 새정부 핵심 공약을 담당한 금융위가 성공적인 이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감원 내에선 소비자보호 분리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과거에도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관련 기구를 독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금감원 내에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두는 방안으로 매듭지은 바 있다.
소비자보호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 일부는 독립을 통해 더 강화된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반면 금융사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조직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사 건전성이 악화되면 금융소비자들의 금융 자산이나 보험금 지급 등 소비자보호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는 까닭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건전성 감독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던 분쟁조정국 등 소비자보호 관련 부서는 독립을 찬성하는 직원들도 많다"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얽혀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