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보다 진한 동업경영’. 재계 54위의 장수기업 삼천리(三千里)에 심심찮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피를 나눈 형제라도 돈 앞에서는 막장드라마 뺨치는 집안싸움을 벌이는 게 다반사지만 남남으로 만나 2대째 서로 얼굴 붉히는 법 없이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내년이면 70돌이다. 3대에 가서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할 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나이차 15살의 이(李)씨, 유(劉)씨 두 오너 집안의 유력 후계자들에게 달렸다.
69년째 핏줄 보다 진한 동업경영
삼천리는 1955년 10월 함경남도 출신의 고(故) 이장균(1920~1997)․유성연(1914~1999)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한 삼천리연탄기업사(현 ㈜삼천리·1966년 7월 법인 전환)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2년 12월에는 삼척탄좌개발(옛 ㈜삼탄·현 에스티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을 세워 석탄채굴사업에 진출했다.
1980년대 들어 한 단계 점프했다. 1982년 5월 ㈜삼천리가 경인도시가스를 인수해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같은 해 9월 ST인터내셔널이 설립한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키데코가 파시르 유연탄광 개발에 성공하며 불 같이 일어났다.
6세 나이 차인 두 창업주는 거침없는 사세 확장 속에서도 동업 기조를 전혀 훼손하지 않았다. 삼천리의 두 축 ㈜삼천리와 ST인터내셔널을 분업 경영하고, 두 집안이 지분을 5대 5로 교차 소유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쌍두마차 체제는 1990년대에 이르러 에너지 사업을 기반으로 기계·건설·제약·금융 분야에 걸쳐 매출 3000억원대에 7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 반열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됐다.
㈜삼천리·ST인터 투톱 재계 54위 성장
‘두 집 살림’은 1993년 2월 대물림됐다. ㈜삼천리는 이 창업주의 2남2녀 중 차남 이만득(68) 회장이 물려받았다. 37살 때다. 앞서 1987년 5월 36살에 작고한 장남 고 이천득 부사장을 대신했다. ST인터내셔널은 유 창업주의 1남2녀 중 장남 유상덕(65) 회장이 승계했다. 34살 때다.
이씨 집안이 경영하는 ㈜삼천리는 경기도 남서부 13개시, 인천광역시 5개구를 독점 공급권역으로 국내 시장점유율 16.9%(2023년 공급량 기준)의 1위 도시가스업체로 성장했다. 계열사는 발전, 집단에너지, 플랜트, 수입차판매, 외식·호텔, 금융 분야에 걸쳐 18개사(연결종속회사 국내 10개·해외 8개)다.
총자산(㈜삼천리 2023년 연결기준) 4조4300억원에 자기자본이 1조6800억원이다. 매출 5조6600억원에 영업이익은 1740억원(이익률 3.1%)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기반으로 남부럽지 않은 현금창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금성자산이 9620억원에 이른다. 부채비율은 165% 수준이다.
유 회장의 ST인터내셔널 또한 우량 그 자체다. 본체의 유연탄 판매사업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자원물류, 금융, 호텔·리조트, 부동산 자산관리 분야의 24개(국내 6개·해외 18개) 계열사를 둔 지주회사 격이다.
작년 매출 6800억원, 영업이익은 903억원(이익률 13.3%)이다. 2017년 12월 인도네시아 탄광 합작법인 키데코 지분 49% 중 40%를 2대주주인 인디카에너지에 6억2220만달러에 매각한 뒤로는 현금이 넘쳐난다. 현금성자산이 1조3700억원이다. 차입금은 830억원에 불과해 부채비율은 3.4%에 머문다. 총자산 3조3100억원 중 자기자본이 3조820억원이다.
세월 힘과 마주한 3세 이은백·유용욱
삼천리는 현재 재계 54위(공정거래위원회 2024년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공정자산 9조4300억원)에 랭크 한다. 3살 차 이 회장과 유 회장이 지켜낸 동업 경영의 위력이다.
두 오너 2세 경영자는 또한 고려대 경영학과 77학번, 79학번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형, 아우로 부를 정도로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3대에 가서도 동업 체제를 유지할 지는 나이 차 15살의 유력 후계자들이 ‘열쇠’를 쥐고 있다. 이씨가(家) 장손 이은백(51) 현 ㈜삼천리 해외사업총괄 대표 사장과 유 회장의 차남 유용욱(36·미국명 유로버트용욱) ST인터내셔널 경영기획실장이 주인공이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세월의 힘 앞에서 마침 이씨, 유씨 두 집안의 유대가 점점 헐거워지고 갈수록 거리감이 멀어지는 징후들이 엿보인다. (▶ [거버넌스워치] 삼천리 ②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