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룹 해체 15년 만에 회고록(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을 내놨다. 김 회장은 이 책에서 대우그룹은 신흥관료들에 의해 외환위기 극복의 걸림돌로 취급돼 기획 해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화를 벌어 빚을 갚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를 늘려 기업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신흥관료는 IMF프로그램에 따라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문어발을 끊어내고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 특히 대우그룹 같은 부실기업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측의 파워게임에서 신흥관료가 승리하면서 대우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세계경영) 대우그룹은 사라졌지만 김우중 회장이 부르짖었던 세계경영은 살아남았다. 수출이 살 길이라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우중식 세계경영은 신흥국가를 상대할 때 교과서로 통한다. 김 회장은 신흥시장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50 대 50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돈을 벌면 50%만 회사 이익으로 하고 나머지 50%는 그 나라를 위해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손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무엇보다 도전을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들이 불가능한 계산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가능한 계산에서 출발한다. 사업가는 1%의 가능성만 있으면 이 가능성을 불쏘시개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 김 회장은 세계경영의 주춧돌은 탄탄한 제조업에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수출을 통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제조업이다. 제조업이 커져야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긴다”는 논리다. 신흥관료들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서비스부문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왔는데, 금융을 키워야 한다던 사람들이 실제로 했던 건 금융으로 돈을 버는 것일뿐 경제를 키우자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있기 때문에 제조업을 고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부가가치 제조업은 신흥국으로 넘기고 우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특화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용) “젝 웰치처럼 사람 자르는 것이 구조조정은 아니다.” 김 회장은 사람 잘라서 이익 늘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업이 어려울 때도 직원들을 데리고 잘 이겨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경영자라는 것이다. 그는 고용을 줄이지 않고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를 먼저 잘 연구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불황이라 하더라도 성장하는 분야와 성장하는 지역은 반드시 있고, 그걸 찾으면 사람 자를 일이 없다는 얘기다.
#(상생)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기업도 망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순망치한’의 관계라고 본다. 그럼에도 대기업 실무자들이 자기 실적을 채우기 위해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의 패악을 부리는 일이 많은데 이는 내부 시스템으로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눈앞의 이익보다는 파이를 더 키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도 자기 분야를 전문적으로 해서 규모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하는데, 돈 조금 벌었다고 다른 곳으로 한 눈 팔다가 망한 곳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청년실업)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청년 실업 문제 해법으로 누구나 하는 얘기다. 김 회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신흥국으로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연봉 2만 달러(2000만 원 선)를 받으면 거의 저축을 못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절반은 저축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흥국에서는 취업은 물론 기업의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승진 기회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베이비부머 역시 신흥국에서 직장을 얻는 게 손쉽고, 노후 자금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