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전쟁이 시작되면서 유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난 6월말 배럴당 110달러를 넘었던 유가는 5개월 만에 7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50달러까지 떨어져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의 ‘치킨게임’이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전쟁의 여파로 한국경제는 때아닌 '저유가 골든타임'을 만났다.
매년 100조원의 원유를 수입하는 한국경제에 유가 하락은 한줄기 빛이다. 국제 유가가 10% 떨어지면 국내총생산은 0.27% 늘어난다고 한다. 민간 소비가 늘면서 투자도 늘어나는 선순환 고리를 다시 잡을 수도 있다. '저유가 골든타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본다. [편집자]
국제유가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놓고 중동 산유국과 미국의 싸움에 불이 붙은 탓이다.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 중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은 없다’를 외치며 국제유가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수요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원유 공급량이 줄지 않는다면 국제유가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역시 당분간 하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 국제유가 바닥은 '50달러'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선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 당 66.1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전 거래일보다 10.23% 급락한 것이다. 두바이유와 브렌트유의 현물 가격 역시 각각 69.09달러, 70.97달러에 거래돼 지난 7월1일과 비교하면 40.09달러, 40.41달러 떨어졌다.
▲ 자료: 한국석유공사 |
국제유가 하락의 시작은 수급 불균형에서 시작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원유 수요의 성장세는 더딘 반면 OPEC 국가들의 원유 생산량은 오히려 할당량을 넘어선 상태다. 이에 더해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원유 공급량이 늘며 유가는 지난 8월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의 셰일혁명에 맞선 OPEC의 원유 생산량 유지 결정이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OPEC은 지난주 각료 회담을 통해 회원국들의 현재 시장공급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된 직후 유가 낙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당초 전문가들은 OPEC이 유가의 하락을 우려해 공급량을 줄이며 시장에 개입, 유가의 추가 하락을 막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OPEC은 셰일혁명으로 입지를 키워가는 미국의 발목을 잡기 위해 당장의 경제적 타격에도 불구하고 현재 생산량을 유지키로 결정했다.
미국의 USA투데이는 “유가가 더 떨어져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겠다는 것이 OPEC의 의도”라고 분석했다. OPEC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42.1%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사우디가 13.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10.8%로 2위다.
점유율 싸움이 지속되면 미국의 석유업계가 일차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셰일원유 생산기업의 손익분기점은 배럴 당 35~75달러로 다양하게 분포돼있다. 따라서 원유 가격이 75달러 밑으로 내려간 상황에서 생산원가가 높고 재무구조가 불안정한 기업은 생산을 중단하거나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배럴 당 50달러 선까지 떨어지면 생산을 포기하는 업체들이 늘면서 유가하락세가 멈출 것으로 예상한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셰일오일은 원유보다 생산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유가가 계속 하락하면 채산성 문제로 셰일기업들의 생산이 어려워진다”며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감소해 유가가 하락세를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OPEC 회원국들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에너지가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당장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인 달러당 50.27루블까지 떨어지며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사우디 역시 유가가 100달러는 돼야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 국내 유가 바닥은 '1500원'
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주 국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 당 1713.3원으로 7월 첫째 주 이후 21주 연속으로 하락했다. 2010년 11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작년 평균보다 207원이나 싸다.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 당 1703.63원으로 전날보다 2.35원 떨어졌다. 이로 인해 수도권 일부 주유소에선 휘발유 가격이 1500원선 후반까지 하락했다.
▲ 자료: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하락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석유공사(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는 “OPEC의 생산목표 유지 결정 등의 영향으로 두바이유 가격이 하루 만에 배럴 당 6달러 이상 떨어지는 등 국제유가 급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추가적인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영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인 환율과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 국제유가 중 유가의 영향이 가장 크다”며 “유가 하락이 지속되면 석유제품 가격도 떨어질 것이고, 현 상황에선 휘발유 가격이 리터 당 1500원 후반 선에서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제유가의 하락폭에 비해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석유제품 가격의 낙폭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7월 첫째 주 소비자에게 공급된 보통휘발유 가격(1859.2원)의 구성비는 세금 49.2%(914.9원), 정유사 공급가격 45.5%(84.5원), 유통비용과 마진 5.3%(98.9원) 등이었지만 지난달 마지막 주(1717.3원)는 세금 52.5%(902.0원), 정유사 공급가격 40.5%(695.0원), 유통비용과 마진 7.0%(120.2원) 등으로 바뀌었다.
고정돼 있는 세금(종량제) 때문에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은 리터 당 173.04원 하락했지만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가격은 131.55원 떨어지는데 그친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석유제품 가격에 붙는 세금 중 가장 많은 비중인 유류세는 745.89원으로 고정돼 있다"며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유류세를 포함한 세금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