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정제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석유화학 제품가격이 저유가 여파로 급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석화제품을 생산하는 화학업체 및 정유사들이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올레핀과 파라자일렌(PX) 등 범용제품 시장은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각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생산시설을 늘린 것에 반해 주요 수입처인 중국 등의 경기 둔화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SK그룹이 야심차게 가동을 시작했던 싱가포르 화학공장이 생산을 중단하는 상황을 맞았다.
문제는 석화시장의 향후 전망이 지금보다 더 어둡다는 사실이다. 화학경제연구원은 오는 2017년이면 미국이 셰일자원을 기반으로 석화제품을 본격 생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 SK, 원가 절감위해 싱가포르 공장 생산 멈춰
21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이 최대주주인 싱가포르 주롱아로마틱 콤플렉스(JAC)가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9월 가동을 시작한 이 콤플렉스는 SK종합화학과 SK가스, SK건설 등이 지분 30%를 갖고 있다.
총 24억4000만 달러가 투입됐으며 연간 PX 60만톤, 벤젠 45만톤, 혼합나프타 65만톤, 액화석유가스(LPG) 28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특히 이 콤플렉스는 콘덴세이트를 원료로 사용하도록 지어졌다.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로 석화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일반 정유시설보다 단순한 스플리터 과정을 거쳐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원유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원유에 비해 콘덴세이트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자 원유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설비 변경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산 가동을 중단했다는 게 SK측 설명이다.
SK관계자는 “유가폭락 등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비공정을 변경하고 있다”며 “1분기 내에 재가동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SK인천석유화학이 콘덴세이트와 나프타, 원유 등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원료가 다양하면 채산성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시설 변경을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시황은 악화되는데.. 국내선 지속 생산
이처럼 석유화학 산업의 채산성은 원료인 원유가격 하락세보다 제품가격 하락폭이 더 커지면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특히 국내 정유 및 화학사들의 주력 제품인 아로마틱 계열(파라자일렌 벤젠 톨루엔 등)은 상황이 심각하다. 파라자일렌의 경우 신증설 경쟁으로 공급이 과잉돼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경우, 지난해 PX 자급률은 56.3%에 그쳤다. 그러나 민간기업과 외국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로 2014년 1200만톤에서 2018년에는 1780만톤으로 확대될 계획이어서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 자료: 화학경제연구원 (밸런스= 생산량-수요량) |
하지만 GS칼텍스나 삼성토탈 등 국내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PX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 없는 상태다. 생산시설이 본격 가동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다.
김은진 화학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에 지어진 PX 생산공장의 가동률을 낮추면 당장 손실이 나는 데다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대규모 생산자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물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요 감소세가 장기화하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