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스앤씨(S&C)를 지렛대로 한 김승연 한화 회장의 드라마틱한 승계 작업의 여정은 어느덧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김 회장에서 아들 삼형제로 이어지는 대물림의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한화S&C를 어떻게 (주)한화와 결합시키느냐는 ‘전’과 3형제간의 몫을 잡음 없이 나누는 마지막 ‘결’의 단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현 수준에서의 관측이 무의미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 ‘전’의 단계에도 본격 진입하지 않았고 두 단계를 동시에 정리할 지 어느 한 단계를 생략할 지 어느 것도 예측하기 어렵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부터).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막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 |
일각에선 한화S&C와 (주)한화가 당장이라도 합병할 것 같은 관측을 내놓기도 하지만 섣부른 전망이다. 한화S&C가 일감몰아주기와 그룹 차원의 전략적 투자로 파죽지세로 커오긴 했으나 (주)한화와의 체급 차이가 여전하다.
체급 차이를 좁히려면 한쪽이 몸집을 불리거나 다른 한쪽이 몸집을 줄여야한다.
한화S&C가 물적분할 이후에도 존속법인 한화프런티어 아래에 있는 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을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지속 추구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김 회장의 아들 3형제가 온전히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편에 있는 상장회사 (주)한화 몸집을 의도적으로 줄이긴 어렵다. 그랬다가는 삼성물산 합병 사태 같은 주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다만 (주)한화에 금융회사 한화생명(18.5%)과 제조회사 한화케미칼(35.89%)·테크윈(32.68%)·건설(95.24%) 지분이 뒤섞여 있는 점은 향후 그림의 단초를 제공한다.
(주)한화는 금융·제조부문을 각각 떼어놔야 온전한 지주회사로 갈 수 있다. (주)한화가 금융·제조 지분을 분리하고 이 가운데 제조부분을 한화S&C와 결합시킨다면 양 측의 체급차이를 보다 쉽게 줄이며 후계승계의 3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제조부문과 떨어지는 금융부문 지분을 누가 교환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4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현 단계에선 전망일 뿐이고 한화도 조바심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한화S&C가 지난 17일 공시한 물적분할 세부내용을 보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을 느끼게 한다.
한화S&C의 분할공시에 따르면 지금의 한화S&C는 한화프런티어(가칭)와 한화S&C(가칭)로 쪼개진다. 한화S&C란 이름을 승계하는 곳은 IT서비스사업을 담당하는 신설회사다. 이 회사의 지분 100%를 존속회사 한화프런티어가 가지고 한화프런티어 지분 100%는 3형제가 가진다.
주목할 점은 물적분할 전후 자산 변화다. 분할 전 지금의 한화S&C는 작년 별도 재무제표 기준 5897억 원의 자산총액 가운데 2378억원(40.32%)의 종속기업투자자산을 보유중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산총액에서 자회사 지분가액이 차지하는 비율(지주비율)이 50% 이상이면 지주회사다. 한화S&C는 지주비율이 40.32%에 달해 향후 자산 변화에 따라 지주회사 강제 지정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한화S&C가 지주회사가 되면 다양한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손자회사의 증손자회사 지분 100% 보유, 증손회사의 국내계열사 지분 보유 제한 등은 한화S&C가 지금까지 해온 확장정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물적분할 후 존속회사 한화프런티어는 미묘하게 바뀐다. 한화프런티어는 자산총액 3744억원을 보유하고 이 가운데 2383억원이 종속기업투자자산이다. 자산총액에서 종속기업투자자산 비중이 63.6%로 50%를 넘어서지만 지주회사 강제지정대상은 아니다.
지난 7월부터 지주회사의 자산총액 요건이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높아진 탓에 분할 후 한화프런티어는 자산총액 기준 미달로 지주회사로 지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분할 직후 신설회사 지분을 절반 가까이 매각하면서 자산비율에 추가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화S&C의 물적분할은 단순히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의식한 것 외에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도 의식한 다각적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추가적인 확장 정책이 필요한 한화S&C로선 지금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를 이유가 없고 원치도 않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화 후계 승계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시간을 살피고 있고, 또한 시간만이 이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