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국내 최초의 저비용항공사(LCC)가 취항했다. 2005년 1월 애경그룹과 제주도가 민관합작(75%대 25%)로 설립한지 1년5개월만이다. 현재 국내 1위 LCC인 얘경 계열의 제주항공이다.
제주항공 초기만 해도 애경컨소시엄을 구성한 계열은 애경유화(현 AK홀딩스), ARD홀딩스(AK에스앤디), 애경산업, 디피앤에프(AK글로벌), 애경화학, 애경개발 등이다. 6개사는 제주항공이 초기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2010년 말까지 자본금 1100억원을 형성할 때가지 액면가(5000원)로 빠짐없이 출자했다.
2009년 수원애경역사가 제주항공의 113억원 제3자배정 유상증자 당시 32억8000만원을 출자해 주주사로 편입되고, 2010년 7월 AK글로벌을 롯데에 매각함에 따라 제주항공 지분이 AK에스앤디에 이전되면서 미세한 주주 변화만 있었을 뿐이다. 2010년 말 애경 계열 주주사들의 지분이 81.7%인 점을 감안하면 제주항공 출자자금이 899억원에 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 애경유지 등장…묘한 타이밍과 가격
2012년, 제주항공의 주주 구성에 급격한 재편이 이뤄졌다. 바로 채형석(58)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일가(一家)가 지분 100%를 소유한 개인기업 애경유지공업이 제주항공의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기존 계열 주주사들의 지분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2012년 4월 수원애경역사의 4.1%(90만4127주), 애경개발의 2.6%(57만3655주)를 전량 인수했다. 이어 8월에는 AK에스앤디 19.1% 중 3.5%(78만주)를 사들여 10.3%(225만7782주)를 확보했다.
이어 이듬해 9월에는 산업은행으로부터 9%(200만주) 중 4.5%(100만주), 11월에는 애경화학 1.8%(40만주) 전량을 매입했다. 이를 통해 소유지분을 16.6%(365만7782주)로 확대, 지주회사 AK홀딩스(69.6%·1531만9052주)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섰다.
묘한 것은 타이밍과 취득가격이다. 당시 애경유지공업은 2008년부터 151억원, 많게는 451억원 6년연속 순익적자(연결기준)로 인해 2013년 말에 가서는 완전자본잠식(자본금 519억원·자본총계 –24억5000만원) 상태였다.
반면 제주항공은 비록 창립 이후 적자 누적으로 자본잠식(2011년 말 74.0%·자본금 1100억원, 자본총계 286억원) 상태였지만 흑자로 반전했던 시기다. 취항 이래 매출이 매년 예외없는 성장 추세를 보이며 2011년 2580억원으로 뛴 데 이어 영업이익도 6년간의 적자 흐름에 마침표를 찍고 139억원 흑자로 돌아섰던 것이다.
애경유지공업이 2012년 3개사로부터 제주항공 지분 10.3%를 인수한 것은 이렇듯 제주항공의 반전을 확인한 직후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분 인수에 소요된 비용이 15억8000만원으로 주당 약 700원밖에 안됐다. 액면가의 7분의 1 수준이다.
아울러 이듬해 애경화학 1.8%를 매입하는 데도 주당 3750원인 15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이제 애경유지공업에게 남은 일은 결과적으로 제주항공 출자지분으로 투자수익을 빼먹는 것 뿐이었다.
제주항공은 2015년 11월 증시에 상장했다. 멈출줄 모르는 성장에서 비롯됐다. 매출은 단 한 번의 주춤거림도 없이 2014년에는 5110억원으로 올라섰다. 2011~2014년 영업이익은 흑자가 계속되며 한 해 평균 202억원이나 됐다.
게다가 2015년 1~6월 동안에만 매출 2870억원에 영업이익으로 307억원을 벌어들였다. 결손금도 모두 해소했고 자본잠식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
제주항공은 상장을 위해 550만주 일반공모를 실시했다. 당시 받아든 몸값이 액면가의 6배인 3만원(공모가·모집금액 1650억원)이다. 상장공모가 애경유지공업의 ‘노난 장사’의 시발점이다.
◇ 영업적자 vs 순익흑자 이면엔 제주항공
제주항공은 상장공모 당시 350만주(63.6%)의 신주모집과 200만주(36.4%)의 구주매출을 병행했다. 매출 주식을 내놓은 주주가 AK홀딩스, 산업은행 외에 애경유지공업으로 대상주식은 100만주였다.
반면 애경유지공업의 제주항공 소유주식 16.6%(365만7782주)에 들인 자금은 총 105억원으로 주당가격이 평균 2870원밖에 안됐다. 이에 따라 100만주 처분을 통해 무려 27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애경유지공업이 2015년에 66억9000만원의 영업적자(연결기준)에도 불구하고 339억원에 달하는 순익흑자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제주항공 주식 처분이익이 한 몫 했다.
이후 제주도 100만주를 무상증여했다고는 하지만 워낙 싼값에 인수했기 때문에 이후로도 대박 행진이 이어졌다.
애경유지공업의 제주항공 지분 무상증여는 제주항공 설립 당시 애경과 제주도간의 주주협약에서 비롯됐다. 제주항공의 납입자본금이 400억원이 된 이후 재무제표상 이익잉여금이 발생하면 애경이 액면가 기준 50억원 상당의 제주항공 주식을 6개월안에 제주도에 무상증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2012년 3월말 체결한 애경컨소시엄과의 합의서에 따라 애경유지공업이 승계했던 것. 이에따라 애경유지공업은 제주항공 상장후 매각제한기간(6개월)이 끝난 뒤 2016년 6월 말 제주도에 100만주를 무상증여했다.
애경유지공업은 이로부터 1년 뒤 또다시 투자회수에 나섰다. 지분 6.3%(165만7782주) 중 120만주를 작년 6월 블록딜을 통해 주당 3만5820원에 넘겼다. 이를 통해 챙긴 차익도 429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매각차익은 2017년 재무실적에 고스란히 잡혔을 게 뻔하다.
잔여지분 1.7%(45만7782주)에 대한 평가차익도 상당하다. 제주항공 주식시세가 현재 4만1500원(27일 종가)에 이르고 있는 터라 177억원의 차익을 챙기고 있다. 2015년 이후 배당수익을 제외하더라도 제주항공 주식차익으로만 총 844억원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채 부회장 일가 소유의 애경유지공업이 2013년 말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뒤 연속 순익흑자기조를 유지하며 자본잠식 규모를 줄여나가고 있는 배경 중에는 이렇듯 제주항공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