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 지분 329만주(4.68%)를 동생과 사촌들에게 증여했다. 시가로 90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20년 전 그룹 회장직에 취임할 때 가족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친인척들에게 SK㈜ 329만주를 증여했다. 시가로 90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
최 회장은 지난 21일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166만주)와 사촌형인 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가족(49만6808주), 사촌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83만주) 등 친족 23명에게 SK㈜ 주식을 증여했다.
시가로 환산하면 9228억원에 달하는 주식이다. 이번 증여는 최 회장이 최근 열린 가족모임에서 제안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최 회장은 지난 20년 동안 형제 경영진들 모두가 하나가 돼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결 같이 성원하고 지지해준 친족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지분 증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최 회장의 증여 취지에 공감해 SK㈜ 주식 13만3332주(0.19%)를 친족들에게 증여하는데 동참했다. 금액으로는 374억원어치다.
이와 관련해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먼저 친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하겠다는 뜻을 제안했다"면서 "SK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안정적인 그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가장 많은 지분을 받은 이는 최 수석부회장이다. 그간 SK㈜ 주식을 단 한주도 갖고 있지 않았던 최 수석부회장은 이번 증여로 SK㈜ 지분 2.36%를 보유하게 됐다. 개인으로서는 형(최태원)과 여동생(최기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지분을 갖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은 IMF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8년 8월 아버지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이 폐암으로 숨진 뒤 38세의 젊은 나이로 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 때 최 수석부회장은 자신의 상속지분을 포기하면서 형의 그룹 승계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도 "동생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해왔다.
1조원에 가까운 주식 증여로 인해 친족들이 내야할 증여세만 해도 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선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에서 증여재산이 상장주식일 때는 증여일 이전·이후 각각 2개월(총 4개월)의 최종시세의 평균값으로 매겨진다.
증여재산이 30억원을 넘으면 50%의 세율이 붙는다. 여기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주식 증여일 때는 할증률이 붙어 지분이 50%를 넘으면 30%, 지분 50% 이하면 20%를 더 내야 한다. 최대 60%인 5500억원가량을 세금으로 내야하는 것.
증여세 신고기한은 증여를 받은 달의 말일부터 3개월내인 내년 2월말까지다. 다만 이 기간내에 신고가 이뤄지면 증여재산의 5%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데, 이를 감안해도 SK㈜의 현 주식시세로 가늠해볼 때 증여세가 52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편 눈길을 끄는 건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에 대한 증여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를 통해 SK케미칼과 SK가스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신의 독자적인 사업기반을 일군 상태라 증여대상에선 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 부회장이 지금의 기반을 마련하는데는 최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의 도움이 컸다. 2009년 SK케미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SK건설 지분을 사주며 SK케미칼에 실탄을 쏴준 곳이 SK㈜다. 이에 앞서 최 회장은 2000년 12월 SK건설 323만주 가량을 SK케미칼에 증여하는 등 진작부터 최 부회장에게 도움을 줬다.
한편 이번 증여로 최 회장의 SK㈜ 지분율은 23.40%에서 18.44%로 줄어든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중심의 현 그룹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