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은 쓰이는 곳이 다양한 '팔방미인'입니다. 비디오 테이프에서부터, 액정표시장치(LCD), 포장재 등 다양한 분야에 쓰입니다. 더군다나 최근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이온전지분리막(LiBS)에도 쓰이며 그 용도가 무궁구진해지고 있습니다.
SKC는 이 필름 사업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선경화학 시절인 1977년 국내 최초 폴리에스터(PET) 필름 독자 개발에 성공한 뒤 40년 넘게 이 분야 업력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PET 필름 연간 생산능력이 25만톤으로 지난해 세계 4위 설비능력을 보유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필름을 쓰는 배터리 분리막 사업은 SK그룹내 SK이노베이션이 영위하고 있습니다. 분리막은 전기차 배터리 등 2차전지 안전성과 성능을 높이는 소재입니다. 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위치해 폭발, 발화를 막고 제품 출력을 높여 전기차 배터리 필수 소재로 꼽힙니다. 분리막은 제작 전 단계로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녹여 얇게 필름 형태를 만들어야 하기에 필름 기술과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분리막(습식)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 중입니다. 왜 SKC는 필름부문 장점을 살려 분리막 사업을 하지 않고 있을까요.
◇ 넝쿨째 굴러간 '수급처'
사실 SKC가 분리막을 키울 의지가 아예 없었진 않았습니다. 1990년대부터 SK이노베이션(당시 SK㈜)과 각자 분리막 관련 기술개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SK이노베이션이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이 회사는 2000년대초 자체 분리막 기술을 개발하고 2004년 국내 최초로 분리막 독자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분리막의 기본인 필름 기술력을 쌓아 온 SKC보다 먼저 기반을 마련한 셈이죠. 이때 SKC는 사업 불확실성, 회사 재무상황 등을 고려해 분리막 사업을 접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당시 SKC는 자금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1997년 246.6%였던 부채비율은 이듬해 384.5%로 100%포인트 이상 올랐습니다. 회사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이던 리튬전지 사업을 위해 그해 회사채로만 2998억원(공모 2600억원, 사모 398억원)을 조달했기 때문입니다.
SKC는 2002년까지 리튬전지 부문에 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히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회사는 2003년 충남 천안 공장에 양산라인까지 갖췄습니다.
다만 SKC는 분리막 사업과 같은 이유로 리튬전지 부문을 포기합니다. 2005년 리튬전지 부문은 물적분할(SK모바일에너지)된 뒤 그해 SK이노베이션에 인수됩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체 수급망을 갖춰 분리막을 키울 자양분을 마련한 셈이죠.
SKC가 군살빼기에 들어간 것도 분리막 사업을 포기한 이유로 보입니다. 이 회사는 1999년 높은 부채비율, 사업 구조조정을 이유로 가공필름사업 일부(스템핑포일, 감열전사리본, 알루미늄 증착 필름 제품 생산설비 및 영업권 일체)를 미국 ITW사에 1500억원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를 바탕으로 분리막 사업에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이 회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6위(비중국산 기준)에 이르는 만큼 분리막도 안정적으로 자체 수급하게 됐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2005년 충북 청주공장 1호기 상업가동을 시작으로 분리막 사업에서 2015년 세계 5위권, 2014년부터는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 중입니다. 이 회사는 현재 분리막 연간 생산능력이 3억6000만㎡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밖에도 중국·폴란드 신설공장, 충북 증평 공장증설 등으로 생산물량을 늘릴 계획입니다. 이르면 2021년 이 회사의 분리막 생산능력은 12억㎡에 이를 전망입니다. 지난 1일에는 회사 분리막, 폴더블 디스플레이 필름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출범해 사업 전문성 확보에도 나섰습니다.
◇ '미련'은 남지만
전기차 바람을 타고 분리막 시장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세계 분리막 시장규모가 2018년 25억달러에서 2020년 35억달러, 2025년에는 88억달러로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 사이 전자가 이동할 구멍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습식, 건식으로 분류됩니다. 습식 분리막은 제품에 구멍을 낼 때 액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말리기 위해 별도 설비가 필요합니다. 이 기술은 기술 개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낮은 출력이 단점으로 거론됩니다.
건식 분리막은 구멍을 낼 때 액체를 활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분리막 구멍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려워 기술개발 문턱이 높은 단점이 있습니다. 다만 건식은 배터리 출력을 높게 낼 수 있어 여러 화학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기술입니다.
SKC도 한때 분리막 제조기술 확보에 나섰습니다. SKC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2013년부터 건식 분리막 기초소재 제조기술 연구개발을 진행했습니다. 비록 연구가 끝난 뒤 롯데케미칼에 특허권을 매각했지만 말입니다.
SKC는 또 2017년 미국 다우케미칼과 합작한 SKC하스디스플레이필름(현 SKC하이테크앤마케팅) 지분 전량을 인수했습니다. SKC하이테크앤마케팅은 그해 열린 사업설명회에서 분리막 기초물질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SKC의 이같은 행보에 지난해에는 분리막 사업이 SKC로 이전될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SKC는 분리막 사업에 나설 계획은 아직 없다는 입장입니다. SKC 관계자는 "정식으로 분리막 사업 재개를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SKC가 분리막 사업에 대한 미련을 해소하기 위한 실행에 나설지 여부는 당분간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