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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사고도 힘든데..' LG화학 재무도 '경고음'

  • 2020.05.27(수) 08:50

LG그룹의 주력계열사 LG화학이 잇달아 터진 대형 안전사고로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인도 현지법인(LG폴리머스 인디아)과 19일 국내 주력 사업장인 대산공장에서 차례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사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에 구광모 LG 회장까지 직접 나서기도 했습니다. 구 회장은 대산공장 화재사고 이튿날 현장을 헬기로 날아가 "모든 경영진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며 기강을 다잡았죠.

이런 일련의 사고가 단순한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최근 LG화학이 속도를 붙여 추진하고 있는 사업구조와 경영방식의 급격한 변화에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수년째 악화일로인 재무 건전성의 흐름에서 불안이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빚은 점점 늘어나는데
수익성까지 급격 저하

몇 가지 경영지표들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빌린 돈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눈에 띕니다. LG화학의 차입금(연결 기준)은 2017년말까지만 해도 3조449억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년뒤인 2018년말 5조3211억원, 작년말에는 8조4143억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재작년에는 74.8%, 작년에는 58.1%나 늘었습니다.

이어 올해 들어서도 단 3개월만에 다시 차입금 규모는 11조5537억원까지 커졌습니다. 작년 말과 비교해 지난 1분기 중 늘어난 빚만 3조1394억원, 증가율은 37.3%입니다. 2017년만 해도 자회사를 제외한 LG화학 본사만 보면 사실상 무차입 경영 상태였지만 이제는 그 때의 4배 가까운 융자금으로 사업을 끌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부채비율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부채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부채비율은 2017년에는 53.3%에 불과했지만 지난 3월말에는 113.1%까지 높아졌습니다. 부채가 자기자본을 조금 넘는, 꽤 건실한 수준이긴 하지만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빠르게 높아진 것이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재무건전성을 가늠하는 또 다른 지표인 이자보상비율은 더 의미심장한, 가파른 변화를 보여왔습니다. 빚은 늘리면서도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은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2017년 29.3배에 달했던 것이 작년에는 4.3배, 실적이 우려보다 괜찮았다고 평가받은 올 1분기에는 3.7배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비율은 기업의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눠 기업이 수입에서 얼마를 이자로 쓰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1 미만이 되면 이자 만큼도 못 버는 한계기업, 좀비기업이라고 부릅니다. LG화학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부채 부담을 이겨낼 힘이 급격하게 떨어진 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가스 누출 사고 뒤 LG폴리머스 인디아 앞에서 현지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사진=인도 엔디티비 제공
재무건전성 악화 이면에는
급격한 사업구조 개편 추진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작년말 이미 이같은 흐름을 보고 LG화학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2월 'A-'에서 'BBB+'로, 무디스는 지난 2월 'A3'에서 'Baa1'로 LG화학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낮췄습니다. 아직은 '초우량'에서 '초'만 뗀 정도입니다.

신용등급까지 낮춰질 정도로 LG화학의 재무건전성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대대적인 사업적 변화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기존 주력인 석유화학사업에 더해 2차전지(배터리), 첨단소재, 생명과학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습니다. 특히 배터리는 LG그룹 차원에서도 사활을 걸고 뛰어든 사업입니다.

LG화학은 작년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총 10조원을 전기차 용도를 중심으로한 배터리 사업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빚이 극적으로 늘어난 건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터리 신사업은 아직은 적자입니다. 키우기 위해 들이는 투자비용은 많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니 그만큼 재무상태는 악화한 겁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미중 무역 갈등이 세계 경기를 억누르고 있는 데 더해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까지 덮쳤습니다. 신사업을 키우기 전까지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해줘야할 석유화학부문마저 실적이 더욱 악화하고 있는 것이죠.

LG화학의 새 비전과 CEO 신학철 부회장/사진=LG화학 제공
'현금 확보' 최우선 순위 둔 뒤
터져나온 현장 안전 사고

2분기는 더 어렵다는 전망입니다. 그래서 LG화학 경영진은 1분기를 마친 직후부터 '현금 확보'를 외치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CEO) 신학철 부회장이 지난달 6일 "현금흐름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지의 사내 메시지를 전달했고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차동석 부사장도 같은달 28일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안정적 현금흐름 관리에 더욱 주안점을 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재무건전성에 경고등은 켜졌고, 수익성까지 급격히 꺾이는 비상상황에서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차 부사장은 올해 투자를 6조원에서 5조원으로 줄인다면서도 "장기적인 미래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필수적인 투자는 하겠지만 다양한 업무 비용을 최대한 줄여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에는 드물던 인명사고가 연속해 일어난 건 그 직후였습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오히려 안전설비에 대한 투자를 2017년 1000억원에서 지난해 2000억원까지 늘리는 등 '안전'에 대한 대비는 더 강화했다는 입장입니다.

LG화학은 이어 지난 26일 대책도 내놨습니다. 전세계 40개 모든 사업장(국내 17개, 해외 23개)에 대해 6월말까지 한달간 고위험 공정과 설비를 우선적으로 긴급 진단해 사고예방 조치를 하기로 했고요. 매월 두 차례 CEO와 각 사업본부장, CFO 등이 참석하는 특별 경영회의도 갖겠다고 합니다. 신 부회장은 "환경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은 절대 추진하지 않으며, 현재 운영하는 사업도 환경안전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철수까지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구광모 회장 말마따나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경영실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안전환경, 품질사고 등 위기 관리에 실패했을 때"랍니다. 73년 역사를 가진 LG화학의 변화는 LG그룹의 명운이 달린 일이기도 하죠. 다만 기업 활동의 안전 확보와 지속가능성은 무엇보다 안정적 재무건전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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