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안되죠. 지난 분기보다는 낫겠지만 여전히 적자가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하반기에나 좀 달라질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한 정유사 직원의 말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지난 분기 역대 최악의 실적을 겪었다. 국내 4대 정유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가 지난 1~3월 낸 영업손실은 총 4조3775억원. 작년 한해 내내 벌어낸 3조1202억원을 다 까먹고 1조2573억원을 더 토해냈다. 점점 심해지는 공급 과잉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급격한 수요위축이 겹쳤다.
상황은 다소나마 나아지고 있다. 1분기 급락했던 유가가 그나마 변동성을 줄여가면서 정유사 수익 기반인 정제마진이 살아나고 있다. 유가가 고꾸라졌을 때 원유를 산 덕에 래깅(lagging)효과가 더해져 수익성이 회복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 위축이 지속되고 있어 정상궤도를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 정제마진은 점점 회복되는데…
19일 KB증권이 페트로넷 통계를 인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5월 중순 이후 한 달여 넘게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의 경우 배럴당 11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서는 4~7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변동폭은 그나마 1분기보다 줄어들었다.
정제마진은 정유사가 도입한 원유의 가격과 이를 정제해 생산한 석유제품의 가격 차다. 정제마진이 높을 수록 정유사의 이익도 확대된다. 정유업계 실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복합정제마진은 업체별로 배럴당 3~5달러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1월말부터 5월 초순까지 코로나19 영향으로 마이너스(-)를 오갔다. 3월말에는 사상 최저인 -13.2달러까지 떨어졌다. 최근 기간별 복합정제마진은 작년 4분기 평균 3달러 수준에서 지난 1분기 -2.7달러로 급락했고, 이번 2분기 들어서는 평균 1달러를 조금 웃도는 것으로 추산됐다.
급락한 유가도 점점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월 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4월 20.39달러에서 지난달 30.47달러로 한달 새 49.4% 올랐다. 여기서 오는 래깅효과 덕분에 정제마진 회복도 지속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정유업계 설명이다.
래깅(lagging)효과란 유가 상승으로 제품 가격이 올라 실제 석유제품을 판매했을 때 거둬들이는 마진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달 이후로 래깅효과를 반영하지 않는 논래깅(Non-lagging) 마진은 여전히 마이너스를 오갔지만 래깅효과를 반영한 복합정제마진이 상승한 것은 이처럼 유가가 어느정도 회복됐기 때문이다.
◇ 매출 감소폭은 더 커져.."4사 1조 적자 예상"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부진이 여전히 문제다. 정유업종은 설비투자 및 자산 비중이 큰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그런 만큼 고정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매출 외형이 쪼그라들면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유가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떨어진 탓에 판매량과 판매 금액 모두 외형 위축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1분기 겪은 정유업계 사상 최악의 적자도 가장 큰 원인은 정제마진 악화에 있었지만 두번째는 매출 감소가 꼽힌다. 4대 정유사의 지난 1분기 정유사업부문 매출은 21조4725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조826억원, 8.8% 감소했다.
이런 매출 부진은 2분기에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매출은 8조원을 하회하며 전년동기 대비 4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쓰오일 역시 3조원대까지 분기 매출이 줄어들면서 전년동기 대비 외형이 절반 가까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때문에 2분기 정유업계의 실적도 전반적으로 적자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짙다. 정유사 한 관계자는 "1분기 만큼은 아니지만 4개사 합쳐 1조원 안팎의 영업손실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코로나로 인한 수요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실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