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집'이라 불리는 정유사는 환율 변동에 특히 민감하다. 매출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를 전량 해외에서 미국 달러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유사는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구입대금 상승에 따른 손실을, 환율이 내리면(원화 가치 상승) 그 반대로 이익을 얻는다.
다만 이같은 환손익은 정유사의 본질적 사업 영역이 아닌 부차적 요인이다. 따라서 재무제표상 영업이익이 아닌 그 밑단에 기재돼 순손익에 영향을 미친다. 이같이 정유사에 중요한 환율이 2분기에는 '그나마' 우호적으로 업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회복된 원화 가치
국내 정유 4사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1분기 평균 수천억원대의 환율환산손실을 입었다. SK가 3015억원으로 가장 많고 GS가 1959억원, S-OIL이 1534억원, 현대가 33억원으로 뒤를 잇는다. 지난해 이 부문 총손실액 2274억원보다 약 1.8배 많다.
수급악화 속 겹악재로 '돌출'
미국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2분기 환율에 긍정적 재료
이는 환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환율은 작년말 달러당 1157.8원으로 저점을 찍은 뒤 매달 상승세를 이어가 올해 3월 들어 1222.6원으로 이 기간 5.6% 올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안전 자산이라 불리는 달러로 투자자들이 몰려 들며 상대적으로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
환율은 과거부터 정유사를 괴롭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2018년 중순부터 환율은 상승추세를 이어갔다. 이 기간 정유 4사 순이익이 영업이익을 하회하는 것은 글로벌 수요 부진에 더해 환율이 일부 영향을 줬다. 여기에 더해 올해 1분기 코로나19로 항공유 등 제품 수요가 부진한 것도 정유사에 결정타를 날렸다.
다만 2분기 들어 환율이 정유4사 실적 개선에 일부 기여할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은 일간 기준 지난 3월 24일 1274.6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4월 들어 1240원대를 밑돌다가 이달 12일에는 1192.8원까지 떨어졌다. 미국 경제가 재계 움직임을 보이며 그에 따른 '온기'가 신흥국으로 확산될 것이란 기대감 등이 한국으로 투자자를 유입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 전망치도 이같은 전망에 부합한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SK이노베이션은 매출 7조2435억원, 영업손실 3869억원, 순손실 2143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S-OIL은 매출 3조2217억원, 영업손실 697억원, 순이익 215억원을 거둘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 본다. 전분기와 비교해 많게는 1조원 이상 순손익이 회복되는 셈이다. 각 회사는 전분기에 비해 1000억원 가량 환율 관련 손실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환율 호재에 더해 각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본질은 '경쟁력'
하지만 환율은 일시적 호재일뿐 군내 정유업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경쟁력 회복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수급악화 속 제품, 기술 경쟁력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유 시장은 수급악화에 신음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P Global platts는 올해 세계 석유 공급량이 170만배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수요는 그에 못미치는 120만~130만배럴 늘어나는데 그칠 것으로 봤다. 설비 국산화를 추진하는 중국의 설비증설, 저렴한 셰일가스가 무기인 미국 업체의 설비투자가 주된 요인이다. 앞으로도 이같은 정유시장 소화불량이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정유사들은 고부가 기술력, 환경친화 정책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기름 찌꺼기' 잔사유에서 저유황 기름을 뽑아내는 울산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를 올 초 완공했다. 이 기름은 선박이 이동할 때 배기가스를 덜 배출하는 친환경 제품이다. GS칼텍스는 4월부터 전라남도 여수 공장에서 쓰는 연료를 저유황 기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말부터 친환경 선박연료 브랜드 '현대 스타(HYUNDAI STAR)'를 출시했다. S-OIL은 울산에 5조원을 투입해 건설한 석유화학 복합설비(RUC&ODC) 준공식을 지난해 갖고 화학산업 경쟁력 강화에 매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급악화 속 판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고부가 또는 친환경 제품이 답이다"라며 "정유사들의 행보도 이같은 방향으로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