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가(家)'에 또 경영권 분쟁 사태가 터졌다. 포문은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돌연 경영권에 도전하는 공시를 내면서 열렸다. 박 상무는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의 조카다. 박 회장은 2009년 '형제의 난'에 이어 10년가량 지나 '숙질의 난'을 경험하게 됐다. 시장의 관심은 사달이 일어난 배경과 수단, 결과 추측으로 요약 가능하다. 박 상무가 왜 이 시점에 경영권에 도전했는지, 누가 돕고 있으며 어느 쪽이 이길지다.
◇ 조카의 결별선언
금호석유 지분 10%를 보유해 개인 최대주주인 박철완 상무는 지난달 28일 "기존 대표보고자(박찬구 회장)와 공동보유관계 해소에 따른 특별관계 해소 및 대표보고자 변경으로 신규보고"한다고 공시했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다시 말해 숙부 박찬구 회장에 대한 경영권 도전을 공식화한 것이다.
박 상무는 이와 동시에 금호석유를 상대로 사외이사·감사 추천 및 배당확대 등의 주주제안을 제기했다. 금호석유에 따르면 박 상무는 배당금은 1만1000원으로 상향하라고 요구했다. 박 상무의 보유 지분(304만6782주)을 고려하면 단순계산으로 배당금 수령액만 335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최종 목적은 돈을 노린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회사 안팍의 우호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호석유는 소액주주가 50%를 소폭 웃도는데, 이들의 지지를 얻어 결과적으로 영향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보라는 설명이다.
금호석유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했다. 회사 측은 "사전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현재 경영진의 변경과 과다배당을 요구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주주들의 지지와 협조를 당부했다.
현재 경영권을 쥔 금호석유 박찬구 회장(6.69%)과 박 회장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 전무(7.17%), 딸 박주형 상무(0.98%) 지분을 합치면 14.84%다. 단순 계산해 박 상무가 금호석유 지분 5% 정도만 더 확보하면 박찬구 회장과 아들딸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그는 왜
박 상무가 돌연 금호석유의 경영권을 요구한 배경은 무엇일까. 박 상무가 금호석유 최대주주 지위에 있는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박 상무의 금호석유 지분은 아버지인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2002년 별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고 박 회장은 박인천 금호 창업주의 차남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박 상무의 금호석유 지분은 5.77% 정도였다. 삼촌들은 모두 제치고 이 회사 최대주주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부장으로 재직하며 경영수업 중이었다. 1997년부터 꾸준히 장내외에서 매수한 기존 주식과 상속 지분을 합친 지분율은 2004년 3분기 말 기준으론 8.94%까지 높아졌다.
이처럼 한때 그룹을 성장가도에 올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분만큼의 영향력 혹은 그 이상도 행사하고 싶었겠지만,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들 다툼 속에서 어느곳이든 경영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시계를 뒤로 돌려 보면, 2009년 전후의 사건들이 결정적이다. 박삼구·찬구 '형제의 난'이 본격화한 해인 2009년 2~3분기 사이에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 지분을 5.3%에서 9.44%로, 그의 장남 박준경 씨(현재 금호석유 전무)도 4.71%에서 9.03%로 확대했다.
박 상무 역시 이 기간에 10.01%에서 11.96%까지 지분을 확대하며 금호석유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박 상무는 금호산업 지분을 기존 4.84%에서 2.84%로 줄였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지분 대부분이 사라졌다. 금호산업 비중을 줄이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확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박찬구 회장 편에 서기 위해서였을까.
애초 박 상무는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3분기 말 기준)만 해도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33.5%, 금호석유화학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14.04%였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 지분 21.07%를 쥔 최대주주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의 정점에 있었던 것이다.
형제의 난으로 갈라서게 된 박삼구 전 회장이 금호산업,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를 가져갈 때 박철완 상무는 아시아나를 갖는 것을 구상했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박찬구 회장 측에 선 격이 됐지만 숙부와 조카 모두 원하는 게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2010년 그룹 전체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고, 채권단은 그를 아시아나 경영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찬구 회장이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형제의 난 당시 박찬구 회장와 그의 아들이 사들인 금호석유 합계 지분율을 보면 그렇다. 박철완 상무는 최대주주였지만, 홀로 박찬구 회장에 맞서기는 애매한 지분율이었다. 얼핏 보면 박 상무가 박삼구 전 회장 편에 섰다가 박찬구 회장 편에 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시각을 달리 하면 금호석유 지분율 경쟁에서 박 상무가 밀린 셈이기도 하다.
◇ 아, 아시아나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지난해에 다시 변화가 생겼다. 박찬구 회장이 자신의 아들인 박준경 전무만 승진시키면서 박철완 상무는 본격적으로 소외됐다. 게다가 작년 말 금호석유화학이 여전히 11% 지분을 쥐고 2대주주로 있던 아시아나는 정부 주도의 '빅딜'로 대한항공 품으로 넘어가게 됐다. 관련기사☞ 아시아나항공 주식 소송, 박찬구 '승' 박삼구 '패'
하지만 형제의 난 이후에도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간섭했던 금호석유는 이 빅딜 과정에서 아예 입을 닫았다. 개인 최대주주 지위로 박찬구 회장 편에 머물렀으나 내부에서도 소외되고, 아시아나항공마저 멀어지자 '한때 금호의 황태자가 오리알이 됐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미래가 불투명해진 박 상무가 작심하고 다시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다.
금호석유 입장에선 박철완 상무가 '반기'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바람에 이렇다 할 경영수업도 꾸준히 받지 못하고, 박찬구 회장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인 뒤 갈곳 없는 상태가 된 박 상무를 받아줬단 이유다. 물론 박철완 상무 입장에선 최대주주 지위이므로 갈곳 없는 처지라는 표현이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2009년 6월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으로 독립하겠다고 나서면서 '형제의 난'이 시작됐는데, 당시 박철완 상무는 박삼구 회장 편에 섰으나 결국에는 버림 받았고, 당시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확보를 원했지만 실패했다"며 "이처럼 갈곳 없던 박철완 상무를 박찬구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금호석유 측은 박철완 상무의 지분 10%가 없었어도 지금까지 경영권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박 회장 일가의 지분 14% 정도 만으로도 지난 10년 동안 별다른 경영권 도전이 없었다"며 "박찬구 회장의 경영에 대한 주주와 이사회의 신임이 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