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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한국전력의 '회광반조'가 시작됐다

  • 2021.03.24(수) 06:00

실적 개선…원전이용률 오르고 전력원가 낮아진 덕
당분간 원전 증가 예고됐지만 단기적 호재에 불과
원전 이후의 한전, 에너지 전환 미룰 수 없어

한국전력은 지난해 총 4조862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고 지난 2월 알린 바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던 한전이 모처럼 좋은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흑자 전환의 비결이 뭘까요. 

비결은 원전입니다. 지난 수년간 한전의 수익성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좌우했습니다. 간단합니다. 원전의 이용률이 늘면 한전의 수익성이 개선됩니다. 

# 한전의 성공방정식=원전이용률↑+전력구입원가↓

최근 공시된 한전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은 전기판매 부문에서 총 57조9894억원의 매출을 기록합니다. 전기판매 부문의 영업이익은 2조7851억원입니다. 지난 2019년에는 58조9331억원의 매출과 2조8483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었습니다. 매출 규모는 비슷한데 영업실적 차이가 큽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출이 비슷하더라도 들어간 비용이 낮다면 수익은 오릅니다. 사업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지난 2019년 1kWh당 90.48원 수준이던 한전의 전력구입 원가가 지난해에는 1kWh당 81.03원까지 내려갔습니다. 매출이 소폭 떨어졌지만, 이익을 낸 비결은 원가가 낮아진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한전의 전력구입 원가는 어떻게 낮아질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원전입니다. 

한전은 총 6개의 발전 자회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전기를 만들면 전력거래소를 통해 한전이 전력을 사 온 뒤 송·배전망을 통해 가정집과 사업장에 전기요금을 받고 공급합니다. 민간 발전업체로부터 사 오는 전력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기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로부터 나옵니다.

자회사는 원자력발전을 주로 하는 한수원과 석탄화력발전을 주로 하는 남동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등 5개 발전업체가 있습니다.

지난해 한전이 사들인 전기 중 75.30%가 한수원이 생산한 전기였습니다. 지난 2019년에는 70.60%였습니다. 1년 만에 5.3%p 증가했습니다. 원전의 발전원가는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쌉니다. 원전의 이용률이 늘면서 전체 전력구매 원가가 내려가고, 결국 영업이익이 개선된 것입니다. 

한전의 원전 이용률과 전기판매 수익의 관계는 지난해만 있던 일시적인 현상일까요? 아닙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한전의 원전 이용률과 전기판매수익을 연동해보니 원전 이용률이 70% 수준에 못 미칠 때 한전의 전기판매 부문은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반대로 원전 이용률이 오르면 수익성이 개선됐습니다.

# 원전이용률 높아진 이유는?…수리 끝난 원전 가동 덕분

지난해 한전이 실적개선이 원전의 이용률 덕분이라는 결과나 나오자 일부 매체는 한전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전환정책에도 불구하고 원전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원가를 낮춰 이익을 거두려고 환경보호를 외면했다는 얘기입니다. 정말일까요.

실제 지난해 우리 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사용하는 전기를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원전은 신재생에너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결국 퇴출해야 할 운명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전은 원전의 이용률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수익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그러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원전은 가정집 형광등처럼 켜고 싶을 때 켜고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용률 증가는 이미 계획된 것입니다.

발전기를 돌리는 것은 엄격한 규정에 따라 진행됩니다. 발전순위 결정 체계에 따라 한전은 발전 원가가 낮은 발전기부터 가동해 전기를 확보하게 됩니다. 원전의 우선순위가 높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원전 일부는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2016년 6월 한빛 2호기 격납건물의 철판이 부식된 것이 발견됐습니다. 곧이어 다른 원전에서도 철판 부식과 콘크리트 결함 등이 확인됐습니다.

해당 원전의 수리작업에 따라 지난 몇 년간 한전은 원전을 가동하고 싶어도 가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2017~2019년 원전의 이용률이 떨어진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보수 중이던 원전은 수리를 마치고 지난해부터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복귀한 원전의 발전순위가 높다 보니 곧바로 한전의 원전 이용률이 높아진 것입니다.

# 에너지전환 없다면 '바람 앞 촛불'

자. 수리를 마친 원전이 복귀합니다. 신고리와 신한울1·2호기 등 공사가 진행 중인 신규 원전도 있습니다. 원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원전 이용률이 오르면 한전의 수익성에는 좋은 일입니다. 

원전 규모는 당분간 증가할 예정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24기인 원전은 2026년이면 26기로 늘어납니다. 이렇게 봄날이 계속될까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오는 2030년이되면 국내원전 숫자는 18기로 줄어들 예정입니다. 8기의 원전 폐로가 예정됐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원전의 수명을 늘리거나 새로운 원전을 만드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신한울 3·4호기가 대표적입니다. 신한울원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원전 비중 확대 정책으로 도입됐습니다. 1호기와 2호기는 이미 건설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3·4호기는 공사 첫 삽도 못 떴습니다. 

결국 한전은 신한울 3·4호기를 포기한 모양입니다. 한수원은 최근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신규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는 정부 권고안에 따라 건설중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관련 유형자산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고 밝혔습니다. 

신규원전을 만들기 위해 확보한 토지와 건물, 건설장비 등의 유형자산의 가치에 재무제표상 손실을 입혀 장부가보다 낮춘다는 얘기입니다. 손상차손 규모는 20억1100만원에 불과하지만, 향후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자산을 포기한 것입니다. 한전으로서는 아쉬운 결정입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에 햇살이 강하게 비추면서 하늘이 밝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곧 어두워진다는 얘기입니다. 원전의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은 한전의 회광반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 일은 없습니다. 원가가 낮은 원자력 에너지는 공급이 늘어날 예정입니다. 실적이 개선됩니다. 하지만 모두 한시적입니다.

결국 한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한전이 직접 발전사업에 뛰어들려는 것도 욕심보다는 생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2050년이면 한전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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