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가 지난 2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대폭 개선된 실적을 내놨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십자포화를 맞은 지난해보다 업황이 회복된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윤활유 사업이 주력 정유를 앞서는 개선세를 보인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코로나 재확산이란 변수가 여전히 남았다. 실제로 정유사들의 실적은 직전인 1분기와 비교하면 개선되지 않았다. 하반기 역시 코로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겠지만, 윤활유와 같은 상대적 고마진 제품이 이끄는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낫지만, 1분기만 못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1조7224억원으로 전년 -7407억원에서 흑자전환했다. 다만 전분기 4사 합산 영업이익이 2조1771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1% 감소한 것이다. 윤활유 사업이 전년동기는 물론 전분기 대비해서도 선전한 반면, 주력인 정유 사업은 직전 분기 대비 주춤한 영향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회복되는 가운데 윤활유 설비들의 정기 보수와 글로벌 정유시설들 낮은 가동률의 영향으로 타이트한 공급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스프레드가 추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4개사 가운데 영업이익이 가장 많은 곳은 에쓰오일이었다. 1분기만 해도 GS칼텍스가 6326억원으로 1위였고 에쓰오일은 6292억원으로 2위였다. 에쓰오일 영업이익은 5710억원으로 전년 -1643억원에서 흑자전환했다. 반기 기준 영업이익은 1조2002억원에 달해 기존 사상 최대치인 2016년 상반기 1조1326억원을 뛰어넘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중질유 가격 약세로 싱가포르 정제마진이 악화됐으나, 신규 고도화 시설 'RUC'에서 중질류를 원료로 투입, 최대 가동을 지속하고 휘발유와 프로필렌(석유화학 원료)을 생산해 수익성을 높였다"며 "재고 관련 이익도 1390억원으로 전분기 2860억원에 비해 절반 이상 축소됐지만 주력인 휘발유뿐만 아니라 경유 등 주요 제품의 마진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윤활유가 숨은 효자
에쓰오일 실적 개선을 견인한 사업 부문은 정유가 아니었다. 석유화학과 윤활기유 등 비정유 부문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체의 60%(7057억원)에 달했다. 특히 윤활기유 부문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은 40%(4734억원)에 달하는 '알짜'로 자리잡았다.
윤활유의 수익성 개선 기여는 다른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다.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9628억원이 증가하며 흑자전환한 5065억원이었는데, 윤활유 사업은 전년 374억원 대비 505%나 증가한 2265억원이었다. 이는 주력 석유사업 영업이익 2331억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석유사업(정유) 영업이익은 전년 -4329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것이지만, 전분기 대비 1830억원이나 감소했다. 정제마진 하락과 유가 상승 폭 축소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 감소 영향이다.
GS칼텍스도 비슷했다. 이 회사 2분기 영업이익은 3792억원으로 전년 -1333억원 대비 흑자전환했는데, 윤활유 사업은 1592억원으로 전년동기 553억원과 비교해 무려 188% 치솟았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주력인 정유사업 영업이익 1343억원을 넘어버렸다.
GS 관계자는 "석유화학 제품 및 윤활기유 스프레드(원료와 제품 가격차)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해 전년대비 실적이 증가했다"며 "다만 재고 관련 이익의 감소로 인해 전분기 대비 실적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사 2분기 영업이익은 1분기 6326억원에서 40%가량 감소한 것인데, 정유사업 영업이익만 전분기 대비 71%나 감소했다.
현대오일뱅크 실적에서도 윤활기유 사업 영업이익은 921억원으로 정유 909억원을 넘었다. 이 회사는 윤활기유 사업을 2020년 1월에 편입한 바 있다. 현대오일뱅크 전체 영업이익은 2657억원으로 전년 132억원에서 1913% 급증했다. 다만 전분기 대비해선 1471억원이나 감소한 수치다. 다른 회사와 유사하게 재고효과가 감소한 탓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코로나 언제 끝나나…긍정과 부정 '혼재'
정유 업계의 하반기는 어떨까. 실적 개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은 코로나 영향의 완화다. 기름 파는 회사들의 실적이 성장하려면 각종 활동이 활발해지고 수송용 연료 사용도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곳은 에쓰오일이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취임 2주년을 맞은 최고경영자(CEO) 후세인 알 카타니의 리더십 아래 실적 개선을 지속한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알 카타니 CEO는 2년 전 취임 이후 정유·석유화학 복합시설의 상업 가동과 운영 안정화를 주도해 실적 상승세를 이끌었다고 회사 측은 자평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하반기는 전 세계적으로 주춤했던 경제 활동이 증가하고, 수송용 연료의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여 정제마진 또한 회복될 것"이라며 "석유화학 주력 품목인 산화프로필렌(PO)과 폴리프로필렌(PP)도 견조한 수요 회복에 힘입어 시황이 개선되고 윤활기유도 고품질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강해 스프레드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도 하반기 정제마진이 코로나19 영향 완화로 수요가 회복되며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봤다. 화학 사업은 신규 증설 물량에 따라 시황 개선이 제한될 것이란 전망이다. 윤활유의 경우 공급량이 증대됐으나 재고 비축 수요와 진성 수요 회복에 따른 견조한 스프레드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GS칼텍스는 비상장사인 까닭에 하반기 전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코로나19 확산 영향을 고려하는 전제로, 석유화학과 윤활유 부문은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보합'의 전망을 내놨다. 이 회사는 정유 사업의 경우 휘발유는 3분기 보합세 전환을 예상했고 등·경유는 상승세를 탈 것으로 봤다. 석유화학 부문은 시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윤활기유는 공급 증가에 따른 스프레드 감소를 점쳤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차세대 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부문 분할을 추진하는 중인데 석유화학 관련 사업 일부를 정리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김철중 SK이노베이션 전략본부장은 "개별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JV(조인트벤처)와 자기자본 매각 등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 실행하고 있다"며 "석유사업의 경우 향후 시황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 성과 등을 보면서 JV 파트너링 등 다양한 지분활용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사는 현재 자회사 SK종합화학 지분 매각도 추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