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정유업계가 울상이다.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한 가운데 이러한 흐름이 2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횡재세 논의까지 촉발됐던 지난해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에쓰오일(S-Oil)과 HD현대오일뱅크가 올해 첫 성적표를 먼저 받아들었다. 결과는 우울했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급감했다. 정제마진 하락이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게다가 국내에선 원가 공개 규제논란까지 겹치고 있어 불안요인이 커지고 있다.
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1Q 영업익 급락
에쓰오일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5157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영업손실이 났던 전 분기 대비로는 흑자전환 했으나,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61.3% 감소한 규모다. 같은 기간 매출은 9조7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61.3% 줄었다.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HD현대오일뱅크의 올 1분기 영업이익도 25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2% 하락했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정유사들의 영업이익도 상황은 비슷할 전망이다.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82.2% 내린 2941억원이다. GS칼텍스도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국제유가가 상승했고, 정제마진도 치솟아 호실적을 달성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반전됐다는 평가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보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더 커서 정제마진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제품가격에서 원유가격을 제했을 때 정유사들이 실질적으로 갖게 되는 순익이다.
경기침체 ‘OPEC+ 감산·중국 리오프닝 눌렀다’
지난해 6월 배럴 당 약 30달러까지 치솟았던 정제마진은 최근 2달러대까지 추락했다. 지난 3월 넷째 주 7.7달러였던 정제마진은 △4월 첫째 주 5.3달러 △4월 둘째 주 3.9달러로 내려앉더니 4월 셋째 주엔 2.5달러에 거래됐다.
통상 정유사의 손익분기점이 정제마진 4~5달러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정유사들은 공장을 운영할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경기침체로 수요가 따라오질 못해 제품의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 OPEC 플러스(OPEC+)의 감산, 중국 리오프닝 등 업계로선 호재의 요소도 분명 있었으나, 이보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더 컸기에 무게 추가 수요 감소로 기울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정유업계 2분기 실적도 부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는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이번 2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5612억원, 5894억원으로 전망한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5.9%, 65.8% 급감한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국들의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제가 악화해 석유제품 소비가 줄었고 이에 정제마진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며 “특히 2분기 실적에 포함되는 4월 정제마진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해당 분기 실적은 부진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한편 반짝 오르던 국제유가도 경기침체 우려에 상승세가 꺾였다. 최근 90달러에 근접하던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이달 초 OPEC+의 감산 발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26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77.69달러로 장을 마쳤다. 브렌트유 가격이 종가 기준 80달러 아래로 내려온 것은 OPEC+의 추가감산 예고 직전이던 지난 3월 31일 이후 처음이다. 같은 날 6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배럴당 74.30달러로 장을 마감하며 3월 말 수준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