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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현대차 동맹 뒤 숨겨둔 진짜 속내

  • 2023.09.02(토) 17:00

[워치인더스토리]
현대차그룹·고려아연, '니켈 동맹'…상호 윈윈
고려아연, 지분 5% 현대차그룹에…오너지분 경쟁

/그래픽=비즈워치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니켈'로 뭉쳤다

현대차그룹과 고려아연이 손을 잡았습니다. 얼핏 보면 별반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기업의 결합입니다. 2차전지를 두 기업 사이에 끼워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체 개발한 배터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고려아연은 국내 비철금속 제련 1위 업체입니다. 배터리 소재를 다룰 줄 아는 곳입니다.

현대차그룹과 고려아연은 배터리 전구체의 핵심 소재인 '니켈'로 뭉쳤습니다.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과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의 원재료 공동 소싱 △가공 및 중간재의 안정적 공급 △폐배터리 재활용을 비롯한 신사업 모색 등 니켈 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포괄적 협력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전구체는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양극재 원가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니켈은 이런 전구체의 핵심입니다.

김흥수 현대차그룹 GSO(Global Strategy Office) 담당 부사장(왼쪽)과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 사업 제휴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과 손 잡으면 안정적인 니켈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높은 수준의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양질의 니켈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니켈 수급이 안정화되면 현대차그룹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자체 개발 배터리 사업도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고려아연은 안정적인 매출처로 현대차그룹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고려아연은 지난 2017년 배터리용 황산니켈 생산을 위한 자회사인 '켐코(KEMCO)'를 설립했습니다. 작년에는 LG화학과 합작으로 배터리용 전구체를 생산하는 '한국전구체'를 설립하고 올해 안에 울산 온산공단 내 연산 2만톤 규모의 니켈제련소를 완공할 계획입니다. 그 만큼 현대차그룹과의 동맹은 고려아연에게 큰 힘이 됩니다.

다양한 포석

현대차그룹과 고려아연의 동맹은 단순히 니켈 부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고려아연은 폐배터리에서 니켈·리튬·코발트 등 주요 원자재를 회수하는 건·습식 융합 재활용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이 배터리 소재 분야 강화를 위해 집중 육성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배터리 핵심 원료들을 뽑아내 완성차 업체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현대차그룹이 고려아연과 손을 잡으면서 '폐배터리 재활용을 비롯한 신사업 모색'을 꼽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6년부터 고려아연으로부터 순차적으로 니켈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오는 2031년에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에 필요한 물량 중 약 50%에 해당하는 니켈을 고려아연으로부터 공급받을 예정입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과의 동맹을 통해 미국 IRA 규제를 피하고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IRA는 자국의 배터리 공급망을 육성하고 중국산 소재와 원자재를 배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고려아연의 경우 국내 기업인 만큼 IRA 규제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그룹은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유럽연합 핵심원자재법(CRMA) 등 권역별 규제와 ESG 요건 등 글로벌 친환경차 생산에 요구되는 다양한 기준을 충족하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 확보 이외에도 다양한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업계가 현대차그룹과 고려아연의 동맹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

일각에서는 이번 현대차그룹과 고려아연의 동맹에 대해 또 다른 시각도 보냅니다. 표면적 이유 말고 이면에 다른 계산도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과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 사업 제휴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 이외에 고려아연의 지분 5%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인수 주체는 HMG Global입니다. HMG Global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가 공동투자해 설립한 해외법인입니다. 그룹의 신사업과 미래 전략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한 투자 법인입니다.

HMG Global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 5%를 약 5272억원에 인수키로 했습니다. 더불어 고려아연에 기타비상무이사 1인을 추천할 수 있는 권리도 확보하게 됐습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 사진=고려아연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 지분 인수에 대해 협업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통상적으로 두 기업이 협업하는 경우 더욱 공고한 관계를 위해 상대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주식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고려아연도 이미 한화와 주식 교환을 통해 지분을 넘긴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한화의 해외법인이 인수 주체였습니다. 고려아연 정관상 국내 업체의 유상증자 참여를 제한하고 있어서입니다.

여기서 다른 시각이 나옵니다. 이번 동맹이 고려아연의 지배 구조 문제와 연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 입니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 이후 3대째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고려아연 계열사는 최씨 일가가,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창업주의 3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에 오르면서 두 집안의 지분 경쟁이 본격화됐습니다. 

뒤바뀐 지분율

고려아연은 오래전부터 회사 경영 방침을 두고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의견 대립이 심한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가끔씩 고려아연의 계열분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이번 유상증자의 이면에는 최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우군 삼아 지배력을 높이려는 전략이 숨어있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유상증자 후 지분율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현재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장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영풍이 26.11%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장씨 일가는 고려아연 지분(6.56%)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씨 일가의 고려아연 총 지분율은 32.66%입니다. 반면 최 회장과 특수 관계인들의 지분율은 16.98%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최 회장에겐 우호 세력이 있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앞서 설명드렸던 한화(8.85%), LG화학(1.2%), 트라피구라(Trafigura)(1.55%) 등 입니다. 이들 지분을 합하면 범 최 회장 측 지분율은 28.58%가 됩니다. 그런데 이번 유상증자로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유상 증자에 따른 지분 희석을 고려해도 현대차그룹을 최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할 경우 최씨 일가 지분율은 32.12%가 됩니다. 장씨 일가(31.02%)를 넘어섭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 측이 지배력 확대를 노리고 이번 동맹을 추진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확실한 매출처를 확보함과 동시에 지분율을 늘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략을 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이슈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일단 이번 동맹의 최대 수혜자는 최 회장으로 보입니다. 과연 장씨 일가가 반격에 나설까요. 같이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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