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액주주연대 대표가 전운이 드리운 고려아연의 정기주주총회 표대결에 끼어들었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 대표이자 의결권 대리행사 플랫폼 액트(ACT)를 운영하는 컨두잇의 창업자 이상목 씨가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공식 블로그를 통해 고려아연 소액주주들에게 이사회의 안건에 찬성해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발표는 높은 관심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이상목 대표는 5일 비즈워치와 만나 이번 입장문과 관련 "소액주주 관점에서 소액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소액주주는 떼쓰는 사람이 아니다"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개미'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변곡점을 맞았다. 오랜기간 투자해온 DB하이텍이 팹리스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 대표는 단톡방을 만들고,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300명을 모았다. 그 결과 총 2000명이 결집한 소액주주연대로 키워냈다.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DB하이텍은 물적분할 계획을 잠시 연기했지만, 결국 1년 뒤인 2023년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안을 통과시켰다. 소액주주 운동의 한계를 경험한 이 대표는 흩어져있는 주주를 소집하고 주주행동까지 이어갈 수 있는 서비스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그렇게 2023년 1월에 탄생한 액트의 회원수는 현재 4만명까지 늘었다.
소액주주운동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이 대표는 최근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액트 공식 블로그에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정기주총에서 이사회가 낸 안건에 표를 던져달라는 글을 올린 것이다.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영풍그룹 계열회사로, 현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이사회와 최대주주 영풍의 장형진 고문 측의 지분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정기주총에서는 표대결이 예정돼있다. 이사회는 정관변경안과 주당 5000원의 결산배당 안건을 상정했는데, 영풍에서는 이 안건들을 반대하고 나섰다. ▷관련기사: 고려아연, 경영진vs최대주주 정면충돌…주총 표대결 전망은(2월 29일)
이 대표가 올린 글의 제목은 '고려아연 주주환원율 68%(별도기준)면 지지해줍시다(선진국 평균 수준)'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고려아연 투자자들이 모인 종목토론방에선 '뒷통수를 맞았다', '수수료를 탐한다' 등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도 쏟아졌다.
이 대표는 고려아연의 백기사를 자처한 이유에 대해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통 상장사와 소액주주들은 보통 주주환원율 10~20% 범위에서 얼마로 할지를 두고 싸운다"며 "작년 DB하이텍 주총에서 소액주주연대는 주주환원율을 16.6%로 높여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고려아연의 주주환원율은 76%(연결기준)더라, '어떻게 이런 숫자가 나왔나' 싶어 의심스러운 마음에 살펴봤다"며 "살펴보니 번 돈의 절반을 배당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자사주 소각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자사주 소각을 높게 평가했다. 고려아연은 오는 5월8일까지 1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소각 목적으로 취득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주주가치에 미치는 효과가 100이라면 소각 비중이 90에 해당한다"며 "단순히 매입만 할 경우엔 자사주를 다시 처분해 회사로 유입되는 현금만 늘어난다. 소각까지 해야 주주환원이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사회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해 비판도 받았지만, 이는 소액주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회사는 소액주주를 '떼쓰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실제로 DB하이텍을 상대로 주주운동을 하면서 '이번에 들어주면 앞으로 더 요구하지 않겠냐'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이러한 인식과 달리) 기본적으로 우리는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주가 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 지지 선언 이후) '변절했다'는 반응까지 나오는데 회사가 잘하면 백기사가 될 수 있는게 주주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중에 주주들이 회사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고려아연 같은 회사를 지켜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상목 대표는 회사의 주주환원율을 검토해보고 먼저 고려아연에 전화를 걸어 의결권 위임을 돕겠다고 자처했다."고려아연 투자 이유는 신사업 진출"
이상목 대표는 이사회가 제안한 안건을 지지하는 배경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우선 이사회가 제안한 정관변경 안건의 경우, 해외합작법인만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다는 현행 정관 내용을 삭제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에 영풍 측은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최 회장 등 현 경영진이 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 바뀐 정관을 악용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정관변경안을 살펴보면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 과거에 오래된 낡은 정관을 표준정관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며 "금액상한 등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19년 영풍 역시 주총을 열고 이 안건을 개정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건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대차, 한화그룹을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LG화학과의 자사주 교환에 대해서는 신사업 진출을 위한 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현대차 LG화학 한화 등은 원재료를, 고려아연은 매출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라며 "고려아연 주주들을 만나봤는데, 투자 이유가 제련사업이 아니라 2차전지 신사업인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잇단 증자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아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당장의 수치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그는 "최근 1년간 유상증자 등으로 자본이 늘며 ROE가 낮아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재무제표 기준으로 계산한 ROE가 투자성과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사업 특성상 시설을 완공하고, 수요처가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매출이 나온다"며 "미래 사업 성과가 나타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 부분을 주주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결산배당 안건에 대해서는 주당 5000원 안건에 대해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사회는 주당 5000원, 영풍은 이보다 높은 주당 1만원을 안건으로 제시했다.
이 대표는 "고려아연의 투자계획에 따르면 10년동안 17조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지금 회사가 가진 현금성 자산은 약 1조5000억원"이라며 "번 돈을 주주환원에 써버리면 결국 나중에는 유상증자를 또 해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고려아연에 믿음 가져…신사업 모니터링 해야"
줄곧 이사회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던 이 대표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주주가치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언제든지 이사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만일 고려아연이 자사주 소각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소액주주를 위해 다시 등을 질 것"이라며 "다만 회사가 그간 배당을 해왔던 모습을 감안하면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려아연이 투자받은 돈을 실제로 신사업에 잘 투자하고 있는지 등을 주주들이 모니터링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대표는 소액주주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는 상장사가 1억을 벌면 그것이 모두 대주주 손에 들어간다는 인식이 있어 '뉴스에 판다'(Sell on the news) 즉, 호재가 발생하면 매도한다"며 "결국 주주환원이란 경제적인 가치도 발생하지만 주주들에게 신뢰를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모범 기업들을 발굴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며 "고려아연 사례처럼 주주환원을 잘하는 회사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혼이 많이 나더라도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