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의 적자를 점차 줄이고 있다. 아직 적자 규모는 4조원에 육박하지만, 올 1분기 바닥을 찍은 후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여기에는 생성형 AI(인공지능) 수요 증가에 따른 고부가 반도체 제품의 판매 확대가 주효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장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고부가 제품으로의 선단 공정 전환에 속도를 내 실적 개선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차세대 제품을 위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도 늦추지 않는다.
바닥 찍고 반등 시작
3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 3분기 연결 기준 DS(디바이스 솔루션, 반도체) 부문 매출은 16조4400억원, 영업손실은 3조7500억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1.6% 증가했고, 영업손실은 6100억원 감소했다. 3개 분기 누적 적자는 12조6900억원에 달하지만, 지난 1분기 이후 지속 감소세다. DS부문의 1분기 영업손실은 4조5800억원, 2분기는 4조3600억원이었다.
특히 메모리 사업의 실적 개선이 전 분기 대비 적자 축소를 이끌었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AI 시장 성장에 따라△HBM(고대역폭 메모리) △DDR(더블데이터레이트)5 △LP(저전력)DDR5x등 고부가 제품 판매가 확대되고 일부 제품의 판가가 상승한 덕이다. 감산 효과가 본격화되며 수요 환경이 개선된 것도 긍정적이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이날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PC와 모바일의 경우 고객사의 완제품 재고 조정이 마무리돼 수요 환경이 개선됐고, 서버의 경우 생성형 AI향 고용량, 고사양 제품 수요의 지속 강세가 유지됐다"며 "업계 전반에서 업황 저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며 부품 재고를 확보하기 위한 고객사의 구매 문의가 다수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시스템LSI는 중저가 스마트폰 수요 부진이 지속되며 반도체 수요 회복이 지연돼 실적 개선이 부진했다. 파운드리 역시 단기 수요 변동성으로 인한 가동률 저하 및 라인 증설에 따라 부진한 실적이 이어졌다. 다만 3분기 파운드리 사업부는 HPC(고성능컴퓨팅)을 중심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신규 수주를 달성했다.
정기봉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 지속적인 글로벌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고객의 지속적인 재고 조정에 따라 실적 부진이 반복됐지만, 분기 기준 최대 신규 수주를 달성했다"며 "이는 선단 공정을 요구하는 HPC 고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삼성전자의 명성과 역량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자신했다.
4Q 흑자로 한 발 더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이 회복세에 접어든 만큼, 4분기는 적자 폭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IT 수요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데다, 고객사 재고 수준도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수익성 개선 중심의 사업 운영에 집중하며 실적 개선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먼저 메모리 사업의 경우 4분기 회복 추세가 가속화됨에 따라 전 분기 대비 가격 상승 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고수익 제품인 전장향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HBM 등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 및 기술 리더십에 집중할 계획이다.
시스템LSI의 경우 4분기 모바일 시장의 수요 회복세 진입이 전망되는 만큼, 모바일 고객사의 신제품 부품 공급 증가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파운드리도 소비심리 회복, 인플레이션 완화, PC·모바일 주요 고객의 신제품 출시 등으로 반도체 수요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다만 업황 개선 기대감 속에서도 감산 기조는 지속 유지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업황 회복이 느린 낸드의 경우 생산 하향 조정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탄력적 생산 운영과 수요 개선이 맞물려 재고 수준은 5월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이후 D램·낸드 모두 지속 감소 중이며 이를 감안할 때 4분기에는 빠른 속도로 재고 수준이 감소할 것"이라면서도 "빠른 시간 내 재고 정상화를 구현하기 위해 추가적인 선별적 생산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지속 실행할 예정이며, 특히 D램 대비 낸드 생산 하향 조정 폭은 당분간 상대적으로 크게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낸드의 수익성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선단 공정 전환에도 더 속도를 낸다. 김 부사장은 "이번 다운턴에서 시황 약세와 수익성 하향을 겪으며 사업의 핵심인 원가 및 제품경쟁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이 부분을 우선순위에 두고 현재 낸드 V7· V8으로의 선단 공정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최신 낸드 제품인 V9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정부에 의해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인증을 받으며 낸드 선단 공정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VEU 인증을 받으면 중국 내 생산한 제품 중 지정 품목에 대해 별도 허가절차 및 유효기간 없이 수출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량의 40%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VEU 인증을 통보받아 공정 전환에서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며 "선단 공정 전환은 향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적자에도 미래 준비는 지속
삼성전자는 역대급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도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규모는 계속 키워갈 계획이다. 올 3분기 시설투자는 11조4000억원이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각각 10조2000억원, 7000억원이 투입됐다. 3분기 누적 시설투자 규모는 36조7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4분기에도 높은 수준의 투자를 이어가 올 연간 시설투자 규모를 약 53조7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연간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의 경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평택 3기 마감, 4기 골조 투자 및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R&D용 투자 비중 확대가 예상된다"며 "파운드리는 첨단공정 수요 대응을 위한 평택 생산능력 확대 및 미래 대응을 위한 미국 테일러 공장 인프라 투자 등으로 전년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삼성전자는 HBM 수요가 급증하는 시장 상황에 발맞춰, 업계 최고 생산 수준의 HBM 생산능력 확보를 위한 투자 등 신기술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차세대 제품인 HBM3로의 전환을 서둘러 업계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내년 상반기 전체 판매 물량에서 HBM3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반에 달할 전망이다.
김 부사장은 "내년 HBM 공급 역량은 업계 최고 수준 유지 차원에서 올해 대비 2.5배 이상 확보할 계획으로, 이미 해당 물량에 대해 고객사들과 내년 공급 협의 완료했다"며 "HBM3는 3분기 8단, 12단 제품 모두 양산 제품 공급을 시작했고, 4분기에는 고객사 확대를 통해 판매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HBM3E는 업계 최고 수준 성능인 9.8Gbps(초당 기가비트)로 개발해 24GB 8단 제품에 대한 샘플 공급을 이미 시작했고, 내년 상반기 양산 개시 예정"이라며 "36GB 12단 제품도 내년 1분기 샘플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