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터리 소재 사업 '숨 고르기'에 나선 포스코그룹이 광물 등 원자재 투자엔 속도를 높이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전기차 캐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투자 경쟁도 다소 완화된 현 시점을 오히려 '공급망 구축의 적기'로 보고 있는데요. 반대로 생산라인 및 플랜트 투자는 신중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가동률이 지속 감소함에 따라 공장 설비 투자 사업성은 상대적으로 저조할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투자 철회' 가능성 솔솔
업계 내 '포스코그룹이 배터리 소재 사업 투자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본격 나온 때는 최근 포스코퓨처엠의 합작공장 투자 취소가 알려지면서였습니다. 올해 초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취임한 이후 줄곧 배터리 관련 사업에 의지를 밝혀왔는데, 이와 배치되는 행보여서 눈길이 더욱 쏠렸죠.
당시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2000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전구체 생산 및 니켈 제련 합작공장 투자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전기차 판매 둔화에 따라 투자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됐죠. 국내 배터리 기업 중 전구체 합작공장 투자를 취소한 것은 처음이기도 했습니다.
음극재 공장 계획에도 잡음이 들려왔습니다. 당초 포스코퓨처엠은 5000억원을 들여 포항 블루밸리산단에 음극재 생산공장을 세우려고 했는데요. 이 계획을 재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에 회사 측은 "음극재 공장 착공 및 진행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시장 내 의심의 눈초리는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초 2025년까지 완공한다는 회사 측 목표에도 불구,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으니 말이죠. 전면 철회하거나 적어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 이유입니다.
앞서 8월 말 진행된 피앤오케미칼 지분 매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습니다.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당시 포스코퓨처엠은 OCI와 함께 세운 회사 피앤오케미칼의 지분 51% OCI에 전량 매각, 537억원에 넘겼습니다.(▶관련기사 : 본전 챙긴 포스코, 손실 떠안은 OCI)
재무현황 '노란불' 켜진 포스코퓨처엠
최근 포스코퓨처엠 실적과 재무현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투자 행보의 배경이 엿보입니다. 올해 상반기 포스코퓨처엠은 매출 2조539억원, 영업이익 406억원을 거뒀습니다. 전년 대비 각각 11.8%, 43.9% 감소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 설비투자(유형자산취득·CAPEX) 투자가 이어지면서 재무 부담이 확대됐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의 지난해 연간 CAPEX와 올해 상반기 CAPEX는 각각 1조3522억원, 8250억원입니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를 7배 이상 뛰어넘는 규모입니다.
이에 3년 전까지만 해도 포스코퓨처엠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60.9%, 28.1% 였지만, 올 상반기엔 179.8%, 46.9%로 크게 늘었습니다. 통상 부채비율 200% 이하, 차입금의존도 30% 이하를 적정 수준으로 보는 것을 고려했을 때 회사의 금융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실제 '금융비용'도 급증했습니다. 금융비용은 차입금의 이자부담을 의미하는데요. 같은 기간 금융비용을 비교하면 153억원에서 417억원으로 172% 늘었습니다. 더구나 올해 수치는 상반기 기준이니, 연말경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벌 업황도 고민을 더합니다. 전방 전기차 시장 내 캐즘이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021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109%로 최고치를 찍은 후 2022년 56.9%, 2023년 36.4% 등으로 우하향 곡선을 그립니다. 올해 1~7월 누적 기준,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땐 20.8%로 추락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선 7.1%로 고꾸라졌습니다. 이는 전년도 상승률 대비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공급망 투자 지금이 적기…미국 대선엔 촉각"
이러한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 포스코그룹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배터리 추진 동력은 여전하고, 큰 기조는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입니다. 세부 조정이 있을 순 있으나, 캐즘을 기회로 원자재 공급망 구축에 공을 들이는 전략을 꾸준히 펼칠 것으로 관측됩니다.
김준형 포스코그룹 배터리소재 총괄(부사장)은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이차전지포럼' 창립총회 이후 취재진에게 "전기차 캐즘 여파로 고객 주문이 줄어 투자 속도를 조정하는 정도"라며 "현재 리튬 가격이 10달러 조금 넘으니 오히려 새로운 광산이나 염호를 잡을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칠레에서도 비딩을 진행 중이고 호주 새로운 광산도 들여다 보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1981년 호주 광산 투자를 시작으로 20건 이상의 원료개발 투자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2018년엔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광권 및 호주 필바라 리튬 광산 지분을 인수, 안정적인 광물 공급처를 확보했죠. 이어 최근엔 탄자니아 마헨지 광산 지분을 늘리며 흑연 공급망을 제대로 구축했습니다. 해당 광산의 흑연 매장량은 세계 2위 규모로 알려집니다.
아울러 김 부사장은 "중국 화유코발트와의 합작공장 중단은 포스코의 의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화유코발트가 먼저 '한국에 지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는 건데요. 당초 화유코발트가 해외우려기관(FEOC)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 투자를 결정했으나 아직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EA) 및 FEOC 해당 여부의 판단이 이뤄지지 않아 결정을 번복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포스코그룹은 캐즘이 지나기까지 원자재 공급망을 넓히는 전략을 중심으로 버티기에 돌입할 방침입니다. 최소 미국 대선까지는 이러한 기조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김 부사장은 "현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 대선"이라며 "약 두 달 후 결과가 나오면 이에 따라 대응책을 세울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포항 음극재 공장 등 나머지 투자 관련건도 미국 대선에 따라 향방이 결정될 전망입니다.
한편 최근 포스코퓨처엠이 2조원 가량의 대규모 수주에 성공,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면서 한숨 돌렸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지난 11일 포스코퓨처엠은 1조8454억원 규모의 전기차용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을 따냈는데요.
고객사간 비밀 유지 합의에 따라 계약 상대방 및 계약 기간 등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1년여만에 전해진 대규모 수주 소식에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이 1조원 이상 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1년 3개월여 만입니다. 지난해 하반기 전기차 캐즘이 본격화되면서 수주 공백이 길어진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