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산업의 길을 물었던 '신년 릴레이인터뷰'를 마감합니다. 전문가 9명에게 자동차·반도체·배터리 등 분야의 현안과 해결책을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했던 현안 2가지를 추려내 인터뷰 '에필로그'를 준비했습니다. ▲반도체·로봇업계가 주목하는 모빌리티 ▲가성비 중국 물량 공세에 몰린 한국기업입니다.
"BYD(비야디)는 장기적으로 가격과 품질 모두에서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다."(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국이 레거시(구형) 제품에 대해 경쟁력이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오직 '기술'이다.(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
완성차업체는 결국 '성능이 비슷한 배터리라면 중국산을 쓰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K-배터리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 하락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정경윤 KIST 지속가능미래기술연구본부장)
최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의 공세로 국내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BYD가 국내 진출을 선언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샤오미 역시 전기차 시장 진출을 고민 중이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CXMT(창신메모리)가 급성장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위협하고 있고, 배터리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도 CATL 등이 탄탄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수위를 지키며 국내 기업의 성장을 저지하는 모양새다.
중국산 전기차, 가격 더 낮아진다
지난 16일 국내 브랜드 론칭을 공식 선언한 BYD는 소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인 아토3(ATTO3)의 사전 계약을 시작했다. 국내에선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불신이 강한 만큼 초기 반응이 시큰둥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아토3의 사전 계약 건수는 일주일 만에 1000대를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낮은 가격 정책이 시장에 통했다고 보고 있다. 아토3의 기본 트림은 3150만원으로, 전기차 구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적용하면 29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비슷한 수준의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 'EV3'와 비교했을 때 수백만원 저렴한 셈이다.
BYD의 높은 글로벌 인지도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BYD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로, 중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에서도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아토3는 지난 2022년 첫 출시된 BYD의 베스트셀링카다.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만 100만대 이상이다.
지난해 하이브리드 차를 포함한 BYD의 판매량은 427만2100대에 달한다. 하이브리드 차를 제외하고 전기차만으로 보면 176만4992대를 팔았다. 작년 178만9226대를 판매한 테슬라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보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테슬라는 실적 공개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출하량이 감소(-1.1%)했지만, BYD는 12.1% 성장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BYD의 주력 시장은 중국이지만 글로벌 전기차 1위 업체기도 하고, 해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상태"라며 "일부 우려와 달리 판매망이나 A/S망 등을 갖추고 들어와 국내 시장에 빠른 속도로 먹혀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BYD의 전기차 기술력이 기존 완성차 업체 못지않은 데다, 배터리와 전기차를 모두 생산한다는 점에서도 강점이 있다고 봤다. BYD는 1995년 배터리 회사로 시작해 자동차, 재생에너지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조 위원은 "BYD는 셀부터 제작해 팩까지 만드는 공정이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고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탁월하다"며 "예전에는 성능 문제도 제기됐지만 각종 스마트 편의 기능 등에서도 우리보다 앞선 부분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전기차 시장의 경우 강력한 국산 브랜드가 없다는 점에서 중국 업체들이 진출 실패를 경험한 스마트폰 등과는 경쟁 환경이 다르다는 게 조 위원의 진단이다. 그는 "스마트폰, 가전 등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1위를 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며 "BYD가 국내에 진출한 다른 중국 기업과 상황이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는 현재 시작 단계인 만큼, 중국 업체가 시장을 장악한 드론, 로봇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며 "확고한 기존 브랜드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하는 형태"라고 덧붙였다.
향후 중국산 전기차의 강점인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존재해,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 내 전기차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업계에서는 향후 5년 동안 주요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 확장을 위해 저가 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 위원은 "BYD가 국내에서 책정한 가격은 관세를 비롯해 각종 판매 비용과 수송비 등을 감안해야 하므로 중국 판매가보다 35% 정도 비싼 수준"이라며 "만약 중국 내 가격 경쟁으로 중국에서 가격을 낮추면 한국을 포함한 해외 판매가도 더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산업계서 커지는 中 존재감…대안은?
반도체,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는 중국 최대 D램 제조사인 창신메모리(CXMT)의 성장세가 무섭다. 특히 최근에는 DDR5(더블데이터레이트5) 메모리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당초 업계에서는 중국 D램 업체의 기술력이 국내 기업과 4~5년 정도 차이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창신메모리의 DDR5가 아직 성능 면에서 국내 제품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기술 발전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빠른 셈이다.
CXMT는 지난 2016년 중국 정부가 D램 자립을 위해 민간 기업들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설립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가 오랜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대형 3사가 독점해 온 메모리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1~11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CATL은 점유율 26.1%로 1위를 지켰다. 중국 내수가 중심인 BYD도 점유율을 2.1%P(포인트) 올리며 6위에 올랐다.
이에 비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2.7%P 하락한 45.6%였다. 배터리 사용량은 늘었지만, BYD 등 하위권 업체의 성장에 밀려 점유율을 내준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25.9%로 2위는 지켰지만 전년(27.5%) 대비로는 1.6%P 줄었고, SK온과 삼성SDI는 각각 0.1%P, 1.1%P 점유율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을 대적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가격 경쟁을 펼치기 때문에, 일반 기업이 상대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전기차의 경우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국내 제품과 중국 제품이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나머지 조건이 다 같다면 남는 건 가격뿐"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뿐인데, 국내 기업이 중국 기업만큼 가격을 낮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국내 기업의 대안은 '차세대 기술 개발'로 귀결된다. 정경윤 KIST 지속가능미래기술연구본부장은 '기존 원료를 대체할 수 있는 신기술'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 본부장은 "국내 배터리사들이 중국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을 통해 비싼 금속을 싼 금속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니켈리치를 망간리치 계열로 바꾸는 연구 등 값싼 원료로 기존 원료를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내면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도 "중국은 정부 지원 규모도 크고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인재 수급까지 원활해 격차를 줄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는 것뿐"이라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중국만큼은 어렵겠지만, 우리 정부도 다양한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도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AI 반도체를 하려면 인력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해 이런 부분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아주 촘촘하고 세세하게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도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세제 혜택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하면 조금이라도 가격 경쟁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확보해야 하는 기술은 정부에서 학교, 연구소를 동원해 연구해야 한다"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