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고율 관세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전반에 파장이 확산 중이다. 미국 보호주의와 이에 맞선 중국의 반격 그리고 그 사이서 몸을 낮춘 유럽까지, 배터리 판도가 급격히 바뀔 것이란 중론이 형성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K-배터리가 맞이할 기회와 위기 상황을 짚어본다. [편집자]
▶관련기사: [K배터리 생존전략]上 관세 리스크의 역설…"美 ESS 잡아라" (2025.4.14.)
당장 배터리 업계 내 캐시카우는 '에너지저장장치(ESS)'다. 하지만 업계 전반을 견인하는 '전기차'를 간과할 순 없다. '단기 수익과 장기 지속성' 두 축 사이서 배터리 기업이 전략적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전기차 시장을 놓고 한국과 중국 간 신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은 고신뢰·고에너지 밀도를 무기로 고급 전기차 및 항공·우주용 배터리에 집중, 기술의 깊이를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중국은 빠르고 저렴한 배터리를 키워드로 보급형 모델·상용 전기차·지역형 물류차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용도에 따른 수평적 분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단기 ESS·장기 EV"…배터리 산업의 이중 포석

전기차는 여전히 글로벌 배터리 수요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캐즘이 지속되고 있으나 중장기적 측면서 우상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주요 완성차 기업(OEM)들은 향후 10~20년에 걸친 대규모 전환 계획을 이어가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35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670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판매량은 향후 10여년간 연평균 13% 증가, 2035년께 글로벌 승용차의 전동화 비중은 74%에 달할 것이란 진단이다. 같은 기간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는 4144기가와트시(GWh)로, 연평균 15%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29년을 기점으로 북미·유럽 전기차 시장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진단된다. 오익환 SNE리서치 부사장은 "당분간은 중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겠지만 2029년 이후 북미와 유럽 등 중국 외 시장이 고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승용 전기차는 이미 상용화 단계여서 올해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18% 성장이 전망되나, 전동화율이 80%에 들어서는 2029년 이후부터는 전기차 성장률이 2~3%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울러 전기차용 배터리는 고신뢰·고효율 기술을 요구한다. △프리미엄 시장 진입 △OEM 협업 △특허 전략 구축 등 대부분도 전기차용 배터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축적하는 주요 무대로 인식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LG엔솔, '차세대 플랫폼' 구축 가속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리튬메탈·황화물계 고체전해질·실리콘 음극·바이폴라 셀 등 다양한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전고체 △소듐이온 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건식전극공정(이후 건식공정)'과 셀 설계 등 제조 기술 고도화도 병행 중이다.
차세대 공정으로 알려진 '건식공정'은 파일럿 구축을 완료해 시운전 중에 있다. 건식공정은 분말 형태의 활물질·도전재·바인더 등을 혼합해 전극을 만드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건조 상태서 전극을 제작함으로써 기존 습식공정에서의 '건조공정'을 생략할 수 있다. 일부 라인이 줄어드니 생산 속도는 빨라지고, 고체 혼합체를 압착해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 건조기와 환기장치가 불필요해 설비 투자비용이 줄어드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활물질·도전재·바인더 간 혼합 균일도 확보가 까다롭고 대량생산의 균일성 확보가 관건이다. 테슬라가 사이버트럭에 탑재하는 4680(지름 46mm·높이 80mm) 배터리 생산에 적용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제한적으로 성공한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3년 후 건식공정을 적용한 배터리를 양산할 것이란 목표다. 아울러 소듐이온 배터리를 전고체 배터리와 함께 차세대 배터리로 지목, 공을 들이고 있다. 소듐이온 배터리는 나트륨을 주원료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 중인 제품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에너지밀도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준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듐이온 배터리에도 건식공정 기술 적용이 가능해 생산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손권남 LG에너지솔루션 미래기술·차세대전지개발 담당은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리튬이 부족해질 때가 올 텐데 소듐이온 배터리는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고 안정성이 높으며 출력도 우수하다"며 "다른 차세대 배터리보다 조기에, 2030년 이전에 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 '각형' 기반 시장별 맞춤 포트폴리오
삼성SDI는 주력 제품인 '각형 폼팩터'를 중심으로 맞춤형 공급망을 넓힌다. 전기차에 따라 배터리 세그먼트를 △프리미엄 △볼륨 △엔트리 등으로 분류하고 개발을 진행 중이다.
프리미엄급은 하이니켈 배터리 기반 고에너지 셀을 주력으로 한다. 실리콘·카본 복합 소재를 접목해 주행거리 향상과 안전성을 모두 잡겠다는 전략이다. 중간 가격대인 볼륨급 타깃으로는 미드니켈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니켈 함량을 조정하거나 하이브리드 형태로 가성비를 극대화한다. 엔트리급에 대응하기 위한 LFP 배터리도 준비하고 있다.
곽현영 삼성SDI 중대형 마케팅팀 상무는 "기존 파우치 폼팩터를 쓰던 OEM도 최근 각형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곽 상무는 "지금까지는 프리미엄급 하이니켈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를 주력으로 개발해왔지만, 앞으로는 각형 기반의 다층 제품 전략으로 시장 변동성에 맞춰 나갈 것"이라며 "현재 LFP는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당사는 '각형 LFP'라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각형 배터리는 공간 활용성 면에서 강점이 있다. 셀 크기를 늘려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담거나 셀을 자유로운 형태로 조합할 수 있어 차세대 '셀 투 팩(Cell to Pack)' 기술에 유리하다. 실제 삼성SDI는 해당 기술로 '공간 60%·비용 20%·무게 15% 절감'이라는 성과를 확인했다.
아울러 CATL과 고션(Gotion) 등 중국 기업들은 빠르고 저렴한 배터리를 앞세워 전기차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고션은 LFP 후속 주자로 LMFP(망간첨가 리튬인산철) 전략을 본격화해 눈길을 끈다. 기존 LFP의 한계로 지적됐던 에너지 밀도를 망간 도입으로 해결한다는 게 핵심이다. 망간 수요 증가를 염두에 두고 소재 내재화 작업에도 착수했다. 8000명에 달하는 자체 연구개발 인력에 기반, 전해질·양극재 개발도 내부적으로 강화 중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인수한 독일 보쉬 공장을 통해 유럽 내 LMFP 공급 기반을 마련했고, 인도와 미국에도 공장 설립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줄이고 글로벌 OEM에 맞춘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첸청 고션 수석부사장은 "셀부터 팩까지 전 공정을 수직계열화해 향후 시장 확대에 기민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