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두고 증권가의 엇갈린 입장입니다. 이미 다른 업종은 올해 7월부터 도입됐습니다. 그야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거죠.
다만 증권업종은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1년간의 유예기간을 받아 내년 7월부터 적용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금융지주 계열 증권회사를 중심으로 속속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회사도 내년 도입에 앞서 근무 현황 조사를 진행하고 노사가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일부 증권사는 부서별로 출퇴근 일지를 기록하고 근무 현황을 집계해 컨설팅을 맡기기도 했고요. 노사간 협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필요한 증권거래시간 축소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증권회사가 벌써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근로시간 단축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면서도 급변하는 영업환경에 대응하며 업무의 질까지 높이기 위해선 조직이나 인력 정비와 함께 시스템 정비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기 다른 입장과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애널리스트나 해외주식 담당자, IT 담당자 등이 다수 포함된 금융투자업 종사자는 근로시간을 단순히 계량적으로 단축 규제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직업의 특수성을 인정해 고용노동부고시상의 재량 근로 대상 업무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자본시장연구원이 내놓은 '해외 금융투자업 근로시간제도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주 40시간 근로시간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특례를 통해 직무특성에 대해서도 배려한다고 합니다. 물론 특례를 인정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근로자의 휴식권을 충분히 보장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한편에서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미 52시간 근무를 시작한 증권사의 경우에는 조기 업무가 필요한 부서는 출퇴근 시간을 업무별로 적용해 8시 출근·5시 퇴근, 10시 출근·7시 퇴근 등으로 조를 나눠 근무하기도 합니다.
또 특수 업무로 분류되는 애널리스트는 보고서 출고일을 분산해 근무시간을 조정하고요. 해외주식 트레이더나 거래 시스템 안정화를 위한 IT 담당자의 경우에는 3교대 근무로 3개월마다 순환하면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52시간 근무제도가 정착하려면 일자리 창출이 함께 진행돼야 수월할 텐데요. 내년에는 증권 업황이 대내외 여건 탓에 다소 부정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 일자리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중소형사라면 더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이 때문에 증권회사들이 고민이 많아지는 겁니다.
무조건적인 도입이 맞는지, 증권업 특수성이나 증권회사 규모에 따른 도입 환경을 고려해줄 필요가 있는지 여전히 의견이 팽팽한 상황에서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호하면서 특례를 인정한 해외 사례는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유연함은 갖춘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