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우리은행은 오후 6시에 자동으로 꺼진 PC를 다시 켜기 위해선 지점장(소속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까지는 팀장의 '사후 승인'만으로 PC를 다시 켤 수 있었다. 일선 지점 업무가 대부분 PC를 사용해야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점장의 승인없이 야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우리은행 인사부 관계자는 "소속장이 책임감 있게 주 52시간에 맞는 근로감독을 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PC 오프(OFF)' 개선은 오는 10월 주 52시간 조기도입을 앞둔 우리은행이 추진하는 '핵심제도' 중 하나다. 2013년 은행업계는 퇴근시간 이후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제를 도입했지만 상급자 '눈치'를 보며 다시 PC를 켜는 맹점이 있었다. 이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은행은 퇴근 후에 PC를 다시 켜기 위해선 소속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우리은행은 '퇴근 이후 다시 켜진 PC' 숫자로 소속장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주 52시간 준수 여부를 책임지는 소속장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인사부 관계자는 "근무시간이 지속적으로 초과하는 지점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인력 재배치나 근무 효율화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PC오프제는 유연근무제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된다. 우리은행은 작년 5월 출퇴근 시간을 직원들이 선택할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했고, 올 3월부터는 출근시간 선택 폭을 오전 8시부터 10시30분까지 늘렸다. 예컨대 오전 8시에 출근한 직원의 PC는 오후 5시에, 오전 10시30분에 출근한 직원의 PC는 오후 7시30분에 꺼진다. 유연근무제는 한달에 최대 8번까지 쓸 수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달부터 탄력근로제도 도입, 운영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최대 3개월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 내로 맞추는 제도다. 이번주에 56시간을 근무한 근로자의 경우 다음주에는 48시간을 근무해 평균 52시간을 맞추면 된다는 얘기다. 연말 결산기에 야근이 잦은 재무팀이나 프로젝트 업무로 일시적으로 일이 몰리는 부서에 탄력근무제를 적용해 주 52시간 '사각지대'를 해소할 예정이다.
여기에 우리은행은 올해 채용인력을 작년보다 26% 늘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해 부족한 인력도 보충하고 있다.
▲ [사진 = 이명근 기자] |
일하는 시간에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하고 있다. 우리은행 본점은 이달부터 집중근무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집중근로시간은 오전 9~12시까지, 오후 2~4시까지다. 이 시간대에는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거나 불필요한 회의를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오로지 업무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또 지점 개점 전에 열렸던 '아침 회의'는 오후 4~6시에 진행될 수 있도록 회의 문화도 바꾸고 있다. '아침 회의' 탓에 30분에서 1시간가량 일찍 출근했던 지점 직원들이 정식 출근시간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은행은 내달 주 52시간 도입을 앞두고 이번달 시범운용 중인데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한 우리은행 직원은 "오후 6시 퇴근 이후 본점 지하 헬스장을 이용하는 직원들이 지난달보다 확실히 많아졌다"며 "PC 오프제 개선 등에 대해 직원들이 반기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 18일 산별중앙교섭 조인식을 열고 내년 1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쉬는시간을 보장하기위해 하루 1시간은 PC오프를 도입하고 사업장별로 근로시간 관리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했다.
KB금융은 다음달부터 PC오프제를 시범운영하고, 하나금융과 신한지주도 내년 주 52시간 도입에 앞서 대비하고 있다.